이미지 크게보기 탄자니아 곰비 지역의 커피 농장을 찾은 제인 구달. 1만3000개 이상의 마을에서 커피를 재배하는 이 지역은 땅에 해를 가하지 않는 유기 농법으로 농업의 미래를 만들고 있다. 사이언스북스 제공

희망의 씨앗 / 제인 구달 지음, 홍승효·장현주 옮김／사이언스북스

침팬지 연구가이자 세계적 환경운동가 제인 구달은 식물과 경이로운 식물계 이야기인 이 책을 쓰면서 이런 말을 숱하게 들었다고 한다. “제인 구달이 식물 책을 썼다고? 설마? 구달은 침팬지 연구가잖아.”

사람들이 이렇게 두런거린 이유는 짐작할 만하다. 구달이라면 1960년 스물여섯에 혼자 아프리카 탄자니아 곰비 침팬지 보호구역에 들어가 침팬지의 도구사용, 의사소통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발견해 전 세계 과학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침팬지 대모이기 때문이다.

이미지 크게보기 숲을 탐험하러 나서는 세 살 무렵의 제인 구달.

하지만 만약 식물이 없었다면, 또 숲이 없었다면 그가 평생 연구한 침팬지도 존재할 수 없다는 아주 단순한 사실 그리고 이 문제에 관한 한 인간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 구달이 식물의 세계를 경이롭게 들여다본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그는 “일생 동안 식물을 사랑했다”고 식물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어린 시절 이 별의 불모지, 그중에서도 아프리카의 울창한 숲에 관한 이야기에 사로잡히지 않았다면 침팬지는 결코 내 앞에 나타나지 않을 것”이었다고 하니 구달의 역사에선 침팬지보다 나무와 숲이 먼저였다.

책은 구달이 어린 시절을 보낸 영국 본머스에 있는 빅토리아 시대풍 할머니 집 정원 이야기에서 시작해 9·11 테러 현장에서 살아남은 돌배나무 ‘서바이버’를 직접 찾아가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이론서나 전문서가 아니기에 뚜렷한 구성이나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는 짜임새를 갖기보다는 평생 자연을 사랑해온 노 연구가가 숲길을 산책하며 펼치는 식물에 대한 사색에 가깝다.

이 사색은 어린 시절 하루 종일 올라가 그 위에서 ‘닥터 두리틀’과 ‘타잔’을 읽곤 했던 나무, 탄자니아 곰비 숲에서 그가 가장 사랑했던 울퉁불퉁하고 비틀린 무화과나무에 대한 기억, 그린란드를 처음 방문했을 때 눈과 얼음 아래에서 8개월 견딘 뒤 생명을 피우기 시작하는 작은 식물을 보고 감탄했던 일, 또 세계 곳곳에서 만난 정원사들, 미지의 세계를 누비며 다양한 식물과 종자들을 채집해 오늘날과 같은 꽃과 나무를 볼 수 있게 한 식물 사냥꾼의 역사, 세계 곳곳의 식물원 이야기까지 자유롭게 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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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런 자유로운 이야기들은 두 가지 갈래로 흘러가고 다시 합쳐지곤 하는데 하나는 식물과 식물 세계에 대한 과학적 설명과 과학을 넘어서는 경이로움에 대한 감탄이며, 이처럼 아름다운 식물(나무와 숲)의 세계가 무서운 속도로 파괴돼 가는 현실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또 다른 갈래이다.

그는 문학적 상상이라고 생각했던 식물들 사이의 의사소통이 생태계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들려주며 식물에 대한 놀라움을 표한다. 숲의 나무들은 해충이 나타나면 서로에게 경보를 발령해 나뭇잎을 맛없게 만드는 화합물을 온 숲이 생산하게끔 유도해 해충을 자연스럽게 퇴치한다는 것이다. 가뭄이 닥치면 뿌리를 통해 신호 물질을 전달해 근처에 있는 다른 식물들도 호흡을 줄이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식물 역시 인간과 침팬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정보를 전달해 자신의 생존을 도모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2억 년 동안 지구를 지킨 나무들, 부분의 합보다 훨씬 더 완벽하고 완전한 시스템을 유지해가는 숲 이야기, 포장된 도로 틈새 사이를 밀고 올라오는 식물의 생명력에 대해서도 감탄한다. 인간에게 더 많은 이익을 안겨주기 위해 등장한 대농장이 어떻게 동물의 서식지를 빼앗고, 비인간적 노동을 조장했는지도 지적하고, 사람들을 굶주림에서 구해줬던 작물이 산업의 원료로 전용되면서 경제 발전 속에서도 기아와 빈곤이 해결되지 않는 현실을 비판한다. 유전자 변형 농산물(GMO)의 다양한 문제들도 빼놓지 않고 꼬집는다. 당연히 이 두 갈래의 이야기에는 그의 삶이 자연스럽게 풀려나온다. 그래서 책은 구달의 식물 이야기이며 식물 이야기를 통한 구달 이야기이기도 하다.

책은 원래 멸종위기에 놓인 전 세계 다양한 동물들과 그들을 보호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은 ‘희망의 자연(Hope for Animals and their World·2012)의 한 부분에서 시작했다. 하지만 책의 분량이 너무 많아 식물 부분은 완전히 덜어내야 했다. 이에 구달은 이 부분에 약간만 덧붙여 짧은 책을 쓸 계획이었다. 하지만 일은 그렇게 진행되지 않았다. 구달은 식물들이 자신에게 다른 종류의 책을 쓰기를 원하며 부드러운 뿌리를 자신의 머릿속 깊숙이 들여보낸 것 같다며 이렇게 말했다.

“식물들은 인간의 역사에서 그들이 가진 중요성, 놀라운 치유 능력과 그들이 제공하는 영양분, 그들을 잘못 사용했을 때 상대에게 해를 입힐 수 있는 능력, 그리고 궁극적으로 식물계에 대한 우리의 의존성을 인간들이 완전히 인정하기를 원했다. 식물들은 그들의 존재에 대해 내가 이해하는 바를 이 세계와 공유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가 시도하는 여러 가지 일들에서 식물들을 중요한 동반자로서 더 존중하게 만들려는 것이었다.”

이 같은 식물의 요구에 책은 거의 600페이지에 달하는 제인 구달이 들려주는 ‘식물의 모든 것’이 됐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