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박혜나가 지난 21일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앞 계단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선규 기자 ufokim@

“왓슨은 완벽한 조력자예요. ‘여자’라서 더 빛나죠. 홈즈가 시시하다며 거절한 사건 목록을 나열하며 “집세는 어떻게 할 거냐”고 바가지를 긁기도 하고, 광기 어린 천재 홈즈를 때론 이성적으로, 때론 감성적으로 이끌고 품어주죠. 왓슨이 여자라서 표현할 수 있는 부분이 훨씬 많은 것 같아요.” 대극장이 쩌렁쩌렁하게 “중력을 거슬러!”(뮤지컬 ‘위키드’의 주제곡)라고 외치던 초록 마녀 엘파바. 그녀가 왓슨으로 돌아왔다. 셜록 홈즈와 함께 미궁 속에 빠진 사건들을 해결해 나가는 바로 그 왓슨 말이다. 옥스퍼드대 출신, 작가이자 군의관이라는 설정은 같다. 다만 여자라는 게 다르다. 그래서 이름도 제인 왓슨. 지난 10월 막을 내린 라이선스 대작 ‘위키드’의 주인공 엘파바로 분하며, 누구보다 뜨거운 한 해를 보낸 배우 박혜나(32)를 지난 21일 서울 종로구 연지동 두산아트센터 1층 카페에서 만났다.

이날 오후 8시 공연을 앞두고 옅은 화장으로 나타난 그녀는 더이상 ‘못난이’ 초록 마녀가 아니었다. “분장을 지우니까, 다들 ‘어, 원래 예뻤구나’ 하세요. 아, 초록 마녀 효과죠 뭐, 하하.”

박혜나가 처음 뮤지컬 ‘위키드’의 주연으로 발탁됐을 때, 국내 팬들에게 그녀의 이름은 공연 제목보다 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폭발적인 가창력과 섬세한 연기로 곧 수많은 관객들을 매료시켰고,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다음 행보가 주목됐다. 선택은 국내 창작 뮤지컬. 팬들은 약간 놀랐지만, 그녀에게는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었다. “‘위키드’ 전에도 거의 창작 뮤지컬만 했어요. 스스로 인물을 창조해 나가는 묘미가 있죠. ‘위키드’를 하며 배우로서, 또 사람으로서도 성숙해졌지만 ‘내가 다시 창작 뮤지컬을 할 수 있을까. 새로운 걸 발견하고 발전시킬 수 있을까. 그런 감이 떨어진 건 아닐까’ 하는 고민 아닌 고민을 했었죠.”

지난 13일 개막한 ‘셜록 홈즈-앤더슨가의 비밀’(연출 노우성)은 영국 소설을 원작으로 하지만, 외국 라이선스가 아닌 순수 국내 창작물이다. 2011년 초연 당시 미스터리 추리라는 새로운 장르, 탄탄한 드라마, 재미까지 놓치지 않는 치밀한 연출력으로 ‘깜짝 흥행’을 기록했다. 각종 상을 휩쓸며 “한국 뮤지컬의 가능성을 열었다”는 극찬까지 받은 이 작품은 시즌제로 공연된다는 것도 특이점이다.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홈즈(송용진, 김도형, 안재모)뿐 아니라, 1인 2역을 오가야 하는 아담(에릭) 역에 가수 테이, 이주광, 이충주가 캐스팅되며 화제를 모았다. 박혜나는 “홈즈 세 명은 모두 다른 에너지가 있다. 같은 사람도 공연마다 달라지기 때문에, 매번 새로운 기분”이라고 말했다.

작품에서 만났던 동료들과는 늘 가족처럼 지낸다. “아직도 ‘위키드’ 단톡방(단체 카톡 방)이 울려요. 누구는 딸을 낳았고, 누구는 어떤 작품을 하고. 서로 축하해주고, 또 공연을 보러 가주기도 하고요.” 스트리퍼로 분했던 ‘심야식당’의 배우들은 ‘위키드’ 오디션을 볼 때 함께 기도를 해주기도 했다. “‘작품 따라간다’는 말이 있잖아요. 모두 따뜻한 작품이라서 그랬나. 아, 그럼 ‘셜록 홈즈’ 끝나면 서로 추리만 하고 있으려나, 하하.”

‘작품 따라간다’는 건 역할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위키드’ 때는 늘 정의감에 불타고 있었다. 요즘엔 ‘음, 저 여자는 무슨 상상을 하는 걸까’ 하고 추리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배역에 몰입하면서 성격이 약간 변하기도 하지만, 내 안에 있던 또 다른 내가 드러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반드시 해야 하거나 하기 싫은 역이 따로 없다. 그녀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든 작품, 모든 배역을 운명으로 여긴다. “수 개월간 단역조차 들어오지 않았던 때가 있어요. 한두 달 멍하게 지내다 노래 레슨도 더 받고, 발레도 배우고, 운동도 하고. 내실을 기하는 데 집중했죠. 그 시간이 ‘위키드’ 오디션을 보는 데 큰 도움이 됐고,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하죠.”

대작을 끝내고도 쉬지 않고 새 공연을 시작한 박혜나는 “무대에 오르면 힘이 솟는다. 그게 휴식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언니들이 내 휴대전화에 ‘영혼 동지’로 저장돼 있다. 역시 가족이 가장 큰 힘이 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아, 일기도 자주 써요. 작품에 대한 단상, 어젯밤 꿈 이야기, 자신에게 쓰는 편지 등 노트가 여러 권이에요.”

박혜나는 관객들에게 “복잡해 보이는 미스터리 추리물이지만 그저 따라와 주시면 된다”고 당부했다. “추리하고 분석하고 평가하는 건 무대 위 홈즈와 제가 할 테니까요.”

뮤지컬 ‘셜록 홈즈-앤더슨가의 비밀’은 오는 2015년 2월 8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공연된다.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이미지 크게보기 ‘셜록 홈즈-앤더슨가의 비밀’의 한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