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상하이의 푸둥 지구

“빗장이 풀렸다.” “새로운 투자세계로의 대문이 열렸다.”

지난 17일 중국과 홍콩에서 ‘후강퉁’(호港通)이 시작되자 전 세계 외신이 이렇게 호들갑을 떨었다. 그날 하루만이 아니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세계 주요 경제지들이 후강퉁의 하루하루 거래량을 살피며 관심을 보이고 있다. 후강퉁의 후는 상하이(上海), 강은 홍콩을 지칭한다. 퉁은 말 그대로 통하다는 뜻이다. 중국 상하이 증시와 홍콩 증시가 교차거래를 한다는 의미다. 그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길래 이리들 호들갑일까. 여기에는 분명한 배경이 있다. 국제 경제질서의 주도권을 놓고 미국과 중국이 벌이고 있는 총성없는 암투가 있는 것이다. 물론 중국 주식시장이라는 새로운 투자처의 문이 열린 것도 대단한 일이다. 그러나 후강퉁은 국제 금융시장에 있어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바로 위안화의 국제화가 그것이다. 후강퉁은 국제 기축통화 달러에 대한 중국의 전략적 ‘도전’이다.

◇외국인의 자유로운 투자 = 후강퉁의 국제 금융시장 내 투자적 의미만 본다면 사실 간단하다. 그 동안 중국 주식은 외국의 개인 투자자가 마음대로 살 수 없었다. 상하이 증시에서 외국인 전용주식인 B주에만 투자할 수 있었지만 투자할 종목 수가 50여 개에 불과했다. 우량주인 중국 내국인 전용주식인 A주에 투자하려면 중국 정부로부터 적격외국인기관투자가라는 자격을 얻어야 했다. 중국 주류산업 대표 기업인 구이저우마오타이(貴州茅台), 중국 최대 자동차업체 상하이자동차, 다친(大秦)철도, 중국 유제품업계 1위 네이멍구이리(內蒙古伊利), 백색가전 글로벌 선두업체인 칭다오하이얼(靑島海爾) 같은 중국 우량기업들에는 외국인들이 쉽게 투자할 수가 없었다.

후강퉁이 시작되면서 모든 게 달라졌다. 홍콩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자유롭게 이들 기업에 투자가 가능해진 것이다. 중국 투자자들 역시 홍콩 주식시장을 통해 해외 유수 기업에 자유롭게 투자할 수 있도록 허락됐다. 물론 제약은 있다. 국제 자금의 하루 투자한도(130억 위안·약 2조3000억 원)를 뒀다. 상하이증시 시가총액이 우리 돈 4000조 원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참 적은 액수다. 반대로 중국 당국은 후강퉁 유인책도 내놨다. 그 동안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주식 매매 차익의 10%를 세금으로 매겼지만, 후강퉁을 통해 상하이 주식을 매매하는 투자자에겐 이 세금을 3년간 면제하기로 했다. 이에 우리 국내 투자자들도 후강퉁 시행 첫날인 17일 하루 100억∼150억 원어치 중국 주식을 샀다고 한다.

실시 사흘째까지 후강퉁의 성적은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다. 19일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5.38포인트(0.22%) 하락한 2450.99로 하락마감했다. 선전성분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28.48포인트(0.35%) 상승한 8225.07로 거래를 마쳤다. 홍콩 항셍지수도 전 거래일보다 146.1포인트(0.62%) 빠진 23383.07로 거래를 마쳤다. 후강퉁 거래액도 날이 갈수록 위축되고 있다. 후강퉁 시행 사흘째인 이날 홍콩에서 상하이로 투자하는 후구퉁(호股通)은 일일 투자한도 130억 위안 중 겨우 20%만 거래되며 104억 위안을 그대로 반납했다. 상하이에서 홍콩으로 투자하는 강구퉁(港股通)은 일일 투자 한도 105억 위안 중 2억 위안만 소진됐다.

이에 ‘별것 아니군!’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후강퉁이 올 7월부터 본격 준비됐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 7월부터 9월까지 후강퉁에 대한 기대감에 중국 증시가 15% 이상 올랐었다. 최근 후강퉁의 성적 부진은 조기 투자에 대한 차익 실현 과정일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무엇보다 중국과 홍콩 당국은 후강퉁의 성공을 자신하고 있다. 스위스계 루이인(瑞銀)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 2015년 상하이 A주 시장의 후강퉁 개방 종목 가운데 360개 정도가 모건스탠리캐피털 인터내셔널사(MSCI) 지수에 편입될 것으로 전망했다. MSCI 지수는 세계 각국 기관투자가가 투자 기준으로 삼는 것이다. 즉 MSCI 지수에 편입되면 자연스럽게 글로벌펀드를 비롯한 각종 투자 자금의 유입이 늘게 된다.

◇선전(深玔)과 홍콩 잇는 선강퉁(深港通) = 이에 중국 당국은 이미 선전 증시와 홍콩 증시의 교차거래를 의미하는 ‘선강퉁’을 준비하고 있다. 최근 중국 매체들은 선전증권거래소가 이미 준비에 들어갔으며 내년 선강퉁 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전했다. K C 찬(陳家强) 홍콩 재무국고국장(한국의 기획재정부 장관격)은 최근 이에 대해 “선강퉁이 (후강퉁의) 다음 연구 과제”라고 전하기도 했다.

사실 여기까지가 투자자들이 바라보는 부분이다. 국제 정치, 외교의 전략적 의미에서 볼 때 중요한 것은 후강퉁의 모든 거래가 위안화를 기준으로 이뤄진다는 점이다. 국제 투자자들의 후강퉁 투자가 늘수록 위안화의 국제적 거래규모도 자연스럽게 늘게 되는 것이다. 최근 코트라 상하이 무역관의 분석에 따르면 올 7월 중국 위안화 국제결제 비중은 1.57%로 국제지불통화 규모에서 전 세계 7위를 차지했다. 이는 지난 2012년 13위보다 6단계 상승한 것이다. 오는 2020년이면 위안화가 세계 4대 국제지불통화가 될 것이라는 게 국제 금융기구들의 예측이다. 후강퉁의 실시로 이 예측은 더욱 앞당겨질 가능성이 크다.

FT는 지난 18일자 “후강퉁으로 중국은 미 국채 의존에서 탈피하고 위안화를 기축통화로 만들려는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박차를 가할 것”이라며 “이는 중국의 전략지정학적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후강퉁이 위안화로 결제되는 만큼 역외위안화 시장을 확대해 위안화의 유동성을 높이고 대신 유입되는 달러는 중국의 달러 유동성을 높일 것이라는 게 FT의 예측이었다. 이 경우 굳이 수익률이 낮은 미국 국채를 사들여 보관할 필요가 없게 된다. 지난해 말 기준 중국의 미 국채 보유량은 2000년 말과 비교해 21배 이상 늘어난 1조2700억 달러에 달한다. 이는 12조 달러 규모인 미국 채권시장의 약 10.6%에 해당한다. 즉 후강퉁은 중국의 미국에 대한 금융적 종속관계를 단절하려는 노력의 일환인 것이다.

이머징어드바이저그룹의 조너선 앤더슨 이코노미스트는 “2013년 기준 위안화 표시 안전자산(주식과 채권) 총량은 2500억 달러로 전체의 약 0.1%에 불과했다”며 “하지만 후강퉁 시행으로 위안화의 위상이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다음 행보가 주목되는 대목이다.

베이징 = 박선호 특파원 shpark@munhwa.com

이미지 크게보기 홍콩의 금융 중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