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지난 13일 경북 구미시 해평면 문량리에 위치한 해평광역취수장에서 한국수자원공사 직원이 취수원 위치를 설명하고 있다. 대구는 현재 구미가 취수원으로 쓰고 있는 해평광역취수장으로 취수원 이전을 추진 중이지만 이를 반대하는 구미와 갈등을 겪고 있다.

“구미에 공단이 들어설 때 대구 시민들도 자신의 일처럼 기뻐했는데 이제 와서 마실 물을 같이 못쓰겠다고 하니 배신감을 느낍니다.”

지난 13일 대구시청 앞에서 만난 시민 안모(57) 씨는 최근 ‘먹는 물’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는 구미시에 대해 섭섭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지역 정치권도 날을 세우며 ‘물 싸움’에 뛰어들고 있다. 지난 9월 남유진 구미 시장은 한 토론회에 참석해 “구미 지역에 물 부족 현상을 가져올 수 있는 취수원 이전 사업을 시행할 수 없다”며 반대의견을 분명히 했다.

대구시의회 건설교통위원회 조재구 위원장도 지난 10월 임시회에서 “대구시민들이 불안한 마음으로 구미공단 하류의 물을 더 이상 마실 수 없다”며“구미시가 대승적인 차원에서 협조해 주길 바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표적인 ‘먹는 물’ 갈등 = 30여㎞ 거리에 있는 경북지역의 대표적인 ‘이웃사촌’ 대구와 구미가 최근 대구의 취수원을 구미 지역으로 이전하는 문제를 두고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다. 대구가 이전을 원하는 취수원은 현재 구미가 취수원으로 쓰고 있는 구미공단 위쪽에 위치한 낙동강 지류의 해평광역취수장이다. 대구는 현재 구미공단 아래에 위치한 매곡, 문산 취수장 등에서 상수도를 공급받고 있다. 그러나 구미는 해평광역취수장을 함께 사용할 경우 구미의 수자원 부족과 수질관리가 어려워진다는 이유로 취수원 이전을 반대하고 있다.

이강원 한국사회갈등해소센터 소장은 “여러 인류학자들이 경고하는 대로 세계적으로 수자원확보를 둘러싼 갈등이 에너지를 둘러싼 갈등보다 심각해질 것으로 예측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대구·구미 간 취수원 문제는 현재 진행 중인 대표적인 수자원갈등으로 분류된다”고 말했다.

특히 우리나라는 수자원 문제에서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난 2012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2050 환경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이용 가능한 수자원 대비 물 수요 비율’은 OECD 회원국 중 유일하게 40%가 넘었다. OECD는 이 비율이 40%를 초과하는 나라를 ‘심각한(severe) 물 스트레스’ 국가로 분류한다.

대구와 구미의 취수원 갈등은 수차례 수정된 계획에도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대구는 당초 지난 2009년 안동댐 부근으로 취수원을 이전하려 했다. 그러나 1조 원 이상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 천문학적 비용 탓에 지난 2010년 낙동강 상류인 구미시 도개면으로 취수원 이전 계획을 변경했다. 구미는 상수도보호구역이 추가 지정되면 개발이 제한되는 탓에 주민들의 재산권 피해가 생긴다며 반대했다. 이에 2011년 국토교통부는 한국개발연구원(KDI)에 취수원 이전 예비 타당성조사를 의뢰했고 ‘타당성 없음’ 결론이 나오자 대구도 해당지역 이전을 포기하며 갈등은 소강상태에 이르렀다. 그러나 계속된 시민 불안 등으로 대구가 취수장 이전을 재추진했고 2012년 국토교통부가 해평광역취수장 이전을 중재안으로 제안하자 대구는 이를 받아들여 구미의 협조를 구하고 있다.

◇‘공단물 못마신다’vs‘깨끗이 정수한다’ = 대구는 250만 시민들의 안전한 식수 공급을 위해 취수원 이전이 필요하다며 절박함을 호소하고 있다. 대구는 지난 1991년 구미공단에서 페놀원액이 낙동강으로 유출돼 대구·경북 일대에 수돗물 공황을 일으키는 등 최근까지 페놀 3회, 퍼클로레이트 1회, 1,4-다이옥산 2회, 불산 2회 등 구미공단 수질오염 사고로 시민의 건강과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다며 이전 필요성을 주장했다. 대구시 관계자는 “대구의 현 취수원 상류에 구미공단이 자리하고 있는 한 언제 수질사고가 일어날지 모르고, 법적으로는 문제가 안 되더라도 인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수많은 화학물질이 낙동강으로 흘러들고 있다”며 “잠재된 위험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취수원 이전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반면 구미는 해평광역취수장을 대구와 함께 쓸 경우 장기적으로 수자원 부족과 취수원 오염 현상이 발생한다며 이전을 반대하고 있다. 특히 현 구미공단의 정수시설이 문제없이 운영되고 있는 상황에서 대구의 이전 강행 움직임은 마치 구미를 수질오염의 주범으로 보는 듯해 불편하다는 입장이다. 구미 상하수도사업소 관계자는 “구미공단뿐만 아니라 대구도 250만 시민들이 생활하수 등을 배출하고 있어 낙동강 오염가능성은 어디에서나 존재한다”며 “구미공단만 물을 오염시키고 있어 상류로 취수원을 이전시켜야 한다는 것은 맞지 않는 논리”라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또 “낙동강이 흘러가는 창원, 부산 등 다른 도시들도 연계된 문제인 만큼 취수원 이전보다 낙동강 수질 자체를 정화하는 문제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태가 장기화되며 지방자치단체 사이의 감정싸움으로도 번지는 양상이다. 대구시 관계자는 “현재 해평광역취수장에는 133만4000t의 물이 있고 이중 구미, 칠곡, 김천이 26만3000t을 쓰고 있다”며 “대구가 64만t을 사용하더라도 40만t 가까이 남는데 물부족을 이유로 반대하는 것은 억지다”고 말했다. 구미시 관계자 역시 “낙동강 물은 영남지역 대도시들이 함께 사용하는 물인데 대구 하류의 다른 도시들은 생각하지 않고 자신들의 취수원만 옮기겠다는 것은 지역이기주의다”고 지적했다.

◇중앙정부의 중재에도 해결 가능성은 물음표 = 국토교통부는 지난 3월 대구취수원이전을 골자로 한 ‘대구경북 맑은물공급종합계획’과 관련해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서 검토 용역을 진행 중이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구미가 현재 사용 중인 해평광역취수장을 대구가 함께 사용할 수 있는지 기본적인 역량 조사 등을 진행하고 있다”며 “취수원을 함께 사용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올 경우 구미시와 협의를 거쳐 KDI에 예비 타당성 조사를 요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구·구미 = 글·사진 김대종 기자 bigpaper@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