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이야기꾼’ 어르신… 한 잔 대신 미술관 찾는 직장인…

이미지 크게보기 ‘아름다운 이야기 할머니’로 활동 중인 민찬기(67·왼쪽 첫 번째) 씨가 지난 9월 15일 서울 종로구 한아름유치원에서 전래동화를 들려주면서 아이들과 함께 율동을 하고 있다. 김선규 기자 ufokim@

문화는 우리 삶을 어떻게 바꾸어 놓는가.

좁게는 예술창작, 넓게는 삶의 방식 전체를 포괄하기에 문화의 영향력은 광범위하고 정책의 효과는 장기적일 수밖에 없다.‘문화 융성’의 기치 아래 시행된 크고 작은 문화 정책들은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들을 찾아보자면 이렇다. 잔무에 시달리던 직장인들은 조금 일찍 퇴근해 미술관에서 행복한 저녁 시간을 갖는다. 문화 약자이자 문화 소비자 역할에 머물던 ‘어른’들은 밴드를 만들고,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며 문화를 함께 나누는 문화 생산자로 ‘변신’했다. 영화관이 없는 곳에 영화관이 생기면서 사람들의 일상이 조금은 더 풍요로워졌고 빛나는 아이디어는 창업 지원을 받아 성공적인 새 사업 모델이 됐다. 문화로 삶이 바뀐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문화로 행복한 삶 = “지나가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바이올린 소리에 이끌려 왔습니다. 우연히 일상 속에서 마주친 문화 공연이라 더 반가웠습니다.”

“평소에도 전시회를 많이 관람하지만 이날만큼은 꼭 챙깁니다. 야간 개방을 하니 직장인의 부담도 적고, 밤에 찾는 미술관은 매력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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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는 문화가 있는 날을 ‘얼쑤’라고 불러요. 문화로 어울려 노는(얼) 수요일(쑤)에는 얼쑤 흥겨운 추임새가 절로 나와요.”

문화체육관광부와 문화융성위원회가 매달 마지막 수요일에 시행하는 ‘문화가 있는 날’에 대한 반응이다. ‘문화가 있는 날’은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문화를 가까이 즐길 수 있도록 만든 프로그램으로, 이날엔 공연장, 미술관, 박물관, 영화관 등 전국 주요 문화 시설을 무료 및 할인가로 이용할 수 있고, 곳곳에서 다양한 기획 공연이 열린다. 1년도 채 안 된 ‘문화가 있는 날’은 일단 성공적이다.

지난 1월 첫 시행 당시 참여기관 단체는 주요 국공립 문화 시설과 영화관, 프로농구 등 약 883곳이었으나 10월에는 무려 74.3%나 증가한 1539곳이 참여했다. 관람객도 158.5%나 늘어났다. 현재 세종문화회관·LG아트센터·충무아트홀·블루스퀘어 등 주요 문화 공연장 196곳, CGV·롯데시네마 등 280개 영화관과 프로야구 등이 참여하고 있다. 11월에는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임형주 콘서트 등 소위 ‘핫한 공연’들이 참여해 범위는 점점 확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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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퇴근 시간이 자유롭지 않은 한국 직장 환경이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으나 이날 만큼은 직원들이 문화를 누릴 수 있도록 정시 혹은 조기 퇴근을 시행하는 기업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문화융성위의 하현진 사무관은 “해수욕장, 터미널, 광장 등에서 공연을 준비하자 어떻게 이런 곳에서 공연할 수 있느냐며 책임자들이 난색을 표하기도 했지만, 관객들의 반응이 너무 좋았다”며 “대중이 모이는 일상의 공간이 문화 공간으로 확대된 것도 ‘문화가 있는 날’의 중요한 성과”라고 말했다.

◇문화로 함께하는 삶 = “제 손자, 손녀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시작한 것이 벌써 3년째가 됐습니다. 덕분에 더 많은 손자, 손녀들을 얻게 됐어요.”

‘아름다운 이야기 할머니’로 활동 중인 민찬기(67) 씨는 “가지 말고 이야기를 더 해달라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보람을 느낀다”며 이같이 말했다. 한국국학진흥원이 운영하는 ‘아름다운 이야기 할머니 사업’은 만 56세 이상의 할머니들이 어린이집, 유치원, 박물관 등을 방문해 아이들에게 전래동화나 미담을 들려주는 프로그램이다. 민 씨는 2012년 3월 3기로 활동을 시작했고, 올해는 서울 종로구 한아름유치원 등 3곳의 유아교육기관을 매주 한 차례씩 찾아 아이들을 만나고 있다. 현재 민 씨와 같은 이야기 할머니가 전국에 1500여 명에 이른다.

이 사업은 문화로 신구 세대 모두 윈-윈(win-win)할 수 있는 모델로 꼽힌다. 노인 세대는 일정 수준의 소득과 함께 삶의 지혜와 경륜을 공동체 발전을 위해 사회로 환원할 수 있고, 아이들은 이야기 할머니를 통해 간접적인 가정교육을 받는다.

이야기 할머니가 되기 전 초등학교 교사였던 민 씨는 “나이가 들어서도 아이들을 가르쳤던 경험을 살려 이렇게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성취감을 느낀다”며 “수업을 준비하면서 자연스럽게 공부를 하게 돼 개인적으로는 치매 예방에도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했다.

평소 할머니를 만나기 어려운 아이들은 이야기 할머니를 만나는 것만으로 관계의 확장을 경험한다. 더욱이 이야기 할머니들은 5대1 이상의 경쟁률을 뚫고 1년에 72시간의 교육도 이수한 ‘검증된’ 이들이다. 민 씨는 “이야기 할머니들은 요즘 아이들에게 부족하다고 여겨지는 인성분야에 대한 교육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며 “효·우애·협동심 등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들려주고 인사 같은 기본적인 예절을 가르친다”고 말했다.

◇문화를 바꾸는 창조산업 = ‘관객은 왜 공연기획사가 마련한 공연만 봐야 하는가.’ ‘팬들이 공연을 직접 만들 수는 없을까.’

부루다 콘서트(대표 신동익)는 이 같은 평범하지만 절실한 고민에서 시작됐다. 반짝이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부루다 콘서트는 지난해 11월 ‘원펀치 공연’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20여 개 공연을 무대에 올렸다. 부루다 콘서트의 진행과정은 흥미롭다. 먼저 부루다 콘서트가 공연을 기획하고, 이를 회사의 소셜플랫폼에 올린다. 사이트의 방문자들이 그 공연을 보고 싶으면 이른바 ‘부루다 티켓’(사전티켓)을 구매한다. ‘부루다’는 가수를 공연장으로 부른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부루다 티켓 판매 결과가 나쁘면 공연은 이뤄지지 못하고, 공연 좌석의 15∼20%가 팔리면 공연이 확정된다. 이제 ‘공연에 간다’는 의미의 ‘간다티켓’이 판매된다. 만약 ‘간다티켓’이 완판되면 부루다 티켓을 구입한 관객은 티켓 값을 환급받는다. 일종의 투자금 회수이다.

공연 업계에서 성공적인 사례로 평가받고 있는 부루다 콘서트는 한국콘텐츠진흥원 콘텐츠코리아랩의 예비 창업자를 위한 ‘창작발전소’ 지원을 받은 성공작이다. 지난해 시작된 이 스타트업 사업은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창업으로 결과맺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아이디어의 참신성, 사업 가능성 등을 기준으로 선정되면 멘토지원, 최대 2000만 원의 제작비 지원, 행정·홍보·사무실 지원 등이 제공된다. 부루다 콘서트는 지난해 창작발전소 스타트업으로 선정된 12곳 중 하나이다.

신동익 대표는 “관객들이 직접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들을 키우는 방식으로 진행되기에 비용문제 등으로 일반 공연에서 소외됐던 인디밴드들에게 새로운 돌파구가 됐다”고 말했다.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창업으로 이어지고, 이것이 다시 문화 지형을 바꾸는 아름다운 선순환을 보여주고 있다.

최현미·유민환 기자 ch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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