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지난 23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강로 3가 의림빌딩 앞에서 용산 화상경마장 개장을 반대하는 주민 30여 명이 집회를 열고 있다. 심만수 기자 panfocus@munhwa.com

“우리는 화상경마도박장 추방을 위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학생들의 교육 환경이 보호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주민들의 건강한 삶을 지켜주소서.”

지난 23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강로 3가 의림빌딩 앞.

정방 용산 화상경마도박장 추방 주민대책위원회 공동대표 등 이 지역 거주 학부모 30여 명은 반대집회를 열고 있었다. 집회장 주변에는 ‘화상경마장은 즉각 용산을 떠나라’‘우리 아이들 교육 안전 파괴하는 한국마사회의 도박장 기습 개장 철회하라’ 등 마사회와 이 지역 주민 간 갈등의 골을 짐작할 수 있는 플래카드가 곳곳에 걸려 있었다. 이들은 지난 1월 21일부터 농성장을 마련하고 집회 등을 통해 화상경마장 추방 운동을 벌이고 있다. 1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규모 화상경마장이 이곳으로 옮겨올 경우, 화상경마장과 불과 235m 떨어진 성심여중·고에 다니는 학생들의 교육권 침해가 심각하게 우려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마사회 측은 학교보건법상 상대정화구역(200m) 밖에 시설이 위치하고 있어 이전에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또 기존 용산역 인근 용사의 집에 있던 화상경마장이 용산구 내에서 이전하는 것이어서, 지역 주민 동의를 받아야 하는 의무도 없다고 밝혔다. 마사회 관계자는 “의무는 아니지만, 주민 설명회를 수차례 개최하는 등 주민 동의 절차를 이행했고, 현재도 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복합문화레저 공간 vs 도박장= 마사회와 주민들은 화상경마장을 서로 다르게 불렀다. 마사회는 복합문화·레저 공간을 갖춘 ‘용산 장외발매소’라고 불렀고, 대책위 주민들은 ‘화상경마도박장’이라고 칭했다. 마사회는 경마 장외발권소가 구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문화·레저 시설이 될 것으로 보는 반면, 대책위 주민들은 그저 ‘도박’하는 곳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갈등 이론에 따라 화상경마장 갈등을 분류하면, ‘님비’(NIMBY·지역이기주의) 현상으로 볼 수 있지만, 마사회와 주민 측 모두 님비가 아니라고 설명했다. 마사회 입장에서는 화상경마장은 주민들에게 해가 되지 않고, 오히려 도움을 주는 시설이라고 했다. 혐오시설이 아니라는 것이다.

반면 주민들은 “님비라면, 혐오시설이긴 하지만 그나마 국민 삶에 도움이 되는 ‘필수적인 시설’이어야 하는데, 화상경마도박장은 교육권을 파괴하는 혐오시설 그 자체”라고 강조했다.

◆마사회 “합법 이전” vs 주민 “민주적 절차 무시”= 마사회는 “합법적으로 이뤄진 이전으로 전혀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장외발매소로부터 성심여중·고는 직선거리로 235m 떨어져 있다. 학교보건법상 일반적으로 교육 환경에 위해가 없다고 인정되는 상대정화구역(200m) 밖에 시설이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마사회의 주장대로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또 농림축산식품부 장외발매소 지침에 따르면, 동일지역 내 이전의 경우는 ‘지역 주민 동의’가 ‘의무 사항’이 아니다. 마사회는 또 지난 6월에서 8월 사이 통학인원 조사 결과, 화상경마장 앞길을 통해 통학을 하는 학생들은 일 평균 1∼2명에 불과했다는 결과도 내놨다. 마사회 관계자는 “학교와의 거리도 법률상 문제가 없고, 장외발매소와 학교 사이에 12차로 대로가 있어 주민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학습권 침해 여지가 크지 않다”고 설명했다.

주민들은 법적으로 문제 삼을 여지는 크지 않지만, 민주적 절차에 따른 이전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주민대책위 관계자는 “약 4년 전부터 이곳으로 이전이 추진됐는데, 주민들이 이 사실을 안 것은 지난해 4월이었다”며 “또 마사회로부터 설명을 들은 게 아니라 한 용산구의원을 통해 이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이런 대규모 도박 시설이 들어오는데, 법규정과 상관없이 주민들과 충분히 논의하고 사업을 진행해야 하는 게 기본”이라며 “이 지점에서 민주적 절차 이행이 부족한 마사회에 대해 주민들이 분노하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갈등의 골이 깊어지자 국민권익위원회의 중재도 먹히지 않았다. 권익위는 지난 6월 16일 농식품부와 마사회에 “학교 및 주거밀집지역 인근으로의 이전은 교육 및 주거여건을 저해하고, 외곽 이전을 권고하고 있는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의 입장과도 배치된다”며 “용산 화상경마장 이전을 철회하라”는 전원회의 권고문을 전달했다. 그러나 마사회는 “일부 반대 단체의 표피적이고 예단적 주장을 받아들인 것으로, 찬성 단체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며 ‘수용 곤란 의견서’를 지난 7월 1일 권익위에 제출,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평가위원회 참여 안한 관계기관= 마사회와 주민 간 갈등 해소 기미가 보이지 않자 마사회는 시범운영 평가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다. 이 평가 기구가 내놓는 결과에 따라 개장 여부를 결정하기로 한 것이다. 평가위는 오는 31일 시범운영 평가 결과를 공식 발표할 방침이다.

그런데 평가위에 주민대책위는 물론 국회의원, 정부·지방자치단체, 농식품부, 국민대통합위원회 등의 기관은 한 곳도 참여하지 않았다. 마사회 측이 참여 협조 요청 공문을 보냈으나, 이들 기관은 거부 의사를 밝히거나 의견 회신을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마사회 관계자는 “평가위가 내놓는 결과가 주민들의 의견과 다르게 나오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갈등 전문가들은 갈등을 중재하고 해결해야 할 정부 관계 기관들과 지방자치단체들이 갈등 해결에 소극적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강원 한국갈등해소센터 소장은 “첨예한 갈등일수록 중재에 직접 참여하거나, 적극적으로 개입해 의견을 제시하고, 대안을 모색해야 초기에 갈등 해결이 가능하다”며 “관련 기관들이 책임 있는 자세로 갈등 해결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손기은 기자 so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