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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케리(사진) 미국 국무부 장관의 ‘북한 비핵화 실현을 전제로 한 주한미군 감축 시사 발언’에 대해 청와대와 정부는 23일 “북한의 조속한 핵 포기를 촉구하기 위해 먼 미래의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주한미군과 관련한 미국의 정책에는 변화가 없고, 이에 대해선 한·미 양국 간에 전혀 이견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남북이 제2차 고위급 접촉을 추진 중이고 6자회담 재개 가능성까지 제기되는 상황에서 케리 장관의 전혀 조율되지 않은 돌출 발언이 나온 데 대해 관계 당국은 곤혹스러워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전문가들은 케리 장관의 발언이 외교관으로서가 아니라 코앞에 닥친 미국 중간선거(11월 4일)를 앞둔 정치인으로서 다소 오버한 발언일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한반도 정세와 북한의 태도 변화 가능성을 풍기면서 선거에 유리한 국면을 제공하겠다는 정치적 의도가 있는 다소 무책임한 발언 아니냐는 것이다. 한 정부 당국자는 “케리 장관 발언이 북한에 억류됐던 미국인 석방을 계기로 나왔는데, ‘좀 너무 나갔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정부의 공식 반응은 케리 장관의 발언의 강조점이 주한미군 감축이 아니라 북한 비핵화에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와 정부의 외교안보라인 당국자들은 이 발언이 ‘현재’가 아닌 ‘먼 미래’의 상황에 대한 것이며 미국 정부의 ‘계획’이 아닌 ‘가능성’에 대한 언급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데 주력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23일 문화일보와의 통화에서 “주한미군 관련 미국의 정책에 어떠한 변화도 없고, 따라서 한·미 양국 간에 주한미군 감축 등에 대한 어떠한 논의도 오간 게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케리 장관의 발언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에 대해 “(그런 부분에 대해선) 미국 정부가 국무부 브리핑 등을 통해 분명한 입장을 밝힐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케리 장관의 발언이 미국인 억류자 석방, 국제 사회의 인권 상황 실사 허용 시사 등 최근 북한의 움직임을 겨냥한 게 아니라 북한의 비핵화를 가정한 것이라는 얘기다.

이 관계자는 “케리 장관의 발언을 보면 ‘북한이 국제사회에 복귀한다면’ ‘북한이 비핵화 등에서 진전이 이뤄지기 시작하면’ 등 상당한 수준의 전제 조건을 내걸었는데, 이는 북한 핵 문제의 완전한 해결이 이뤄졌을 때 미국의 정책에도 변화가 있을 수 있다는 미래의 가능성을 얘기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케리 장관이 ‘주한미군’이 아니라 ‘지역 내에서 미군 전력(American force and presence in the region)’이라는 표현을 쓰고, 이를 ‘감축하겠다’가 아니라 ‘감축하기 위한 절차에 들어갈 준비가 돼있다’고 말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전문 외교관료가 아니라 정치인인 케리 장관이 북한의 조속한 비핵화를 강하게 촉구하는 과정에서 논란이 소지가 있는 발언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정부와의 ‘2+2(외교·국방장관) 회담’을 위해 미국을 방문 중인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주한미군 감축은 먼 훗날 비핵화가 실현되는 국면에서 논의될 문제”라며 “(케리 장관의 발언은) 북한이 조속히 비핵화에 나서도록 촉구하는 의미”라고 말한 것은 이런 인식을 반영한다.

하지만 케리 장관의 실언성 발언이 이번이 처음이 아닌 데다 주한미군 문제는 북핵 해결뿐 아니라 한반도 통일 이후 동북아 질서와도 직결되는 민감한 사안이라는 점에서, 일부 당국자들에게서는 불쾌한 기색이 감지된다. 실제로 김대중 전 대통령도 지난 2000년 김정일 당시 북한 국방위원장과의 회담에서 통일 이후 주한미군의 주둔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 의견을 나눈 바 있다.

오남석·방승배 기자 greente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