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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건 마음이건 상처는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후유증이 심각할 수 있다. 특히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마음의 상처는 정상적인 인간관계나 사회생활을 어렵게 할 수 있기에 치료시기를 놓쳐서는 안 된다. 하지만 사회적 인식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다수의 사람들은 마음의 상처 치료에 주저한다. 정신적 병리현상에 대한 우리 사회의 삐딱한 편견 때문이다.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지 않아 고통스러우면서도 아닌 척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그래서이다.

그런데 만약 마음의 상처가 겉으로 드러나고, 제때 치료하지 못한 마음의 상처 때문에 생성된 분노가 육체적으로 표출된다면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물리적으로 발생할 수 없는 일이지만, 만약 마음의 상처와 분노가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몸에 돋아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KBS 2TV 수목미니시리즈 ‘아이언맨’은 이런 궁금증에서 출발한 드라마다.

뛰어난 외모와 막강한 경제력 그리고 사회적 명예까지 모든 것을 가졌지만 감정조절장애를 의심케 할 정도로 자기 마음대로 싸가지 없이 행동하는 남자 주홍빈(이동욱)은 분노를 주체할 수 없을 때마다 몸에 칼이 돋는 인물이다. 실제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상황이지만, 시청자의 정서적 동의를 이끌어낼 수 있다면 드라마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한 설정이다. 물리적 폭력보다 언어적 폭력이 더 무서운 세상이기에 분노의 감정을 날카로운 칼날로 표현한다는 극적 설정은 오히려 신선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상대방을 기함하게 만들어 죽음에 이르게 할 만큼 독설이 몸에 밴 주홍빈의 상처와 분노는 황당무계하기만 하다. 주홍빈의 몸에 돋는 칼날은 드러내기 싫은 상처나 조절되지 않는 분노의 표출이라기보다 그가 제법 잘 나가는 게임개발회사의 대표임을 환기시키는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변신 로봇이 등장하는 게임의 주인공 같은 모습 속에 상처와 분노 같은 정신병리학적 증상을 담아내기에는 처음부터 무리가 아니었을까 싶다.

주홍빈의 상처와 분노에 동의가 되지 않다 보니, 밝고 맑은 심성으로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려하면서 따뜻하게 감싸는 여자 손세동(신세경) 역시 존재감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녀가 감정 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해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주홍빈에게 따뜻한 사랑의 말을 가르치면서 변화시킨다는 상황, 다시 말해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이루어지는 손세동과 주홍빈의 로맨스가 울림을 주지 못하는 이유도 그래서이다. 여고생 시절 독서실에서 시험공부를 하던 중에 걸려온 엄마의 전화가 실은 생사의 기로에 놓인 응급 상황을 알리는 것이었음을 뒤늦게 알고 죄책감에 사로잡혀 살아온 손세동의 정신적 외상에서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다. 치유해야 할 마음의 상처를 전제로 한 상황 설정이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판타지 같은 극적 상황이 설득력을 갖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서적 리얼리티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런데 주홍빈과 손세동의 상처와 분노 그리고 로맨스가 정서적 리얼리티 형성의 전제 조건인 극적 개연성을 얼마나 확보하고 있는지는 미지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추고 싶은 마음의 상처와 다스려지지 못하는 분노의 감정이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몸에 돋아난다는 발상의 참신함은 여전히 유효하다. 마음의 상처를 감추고 분노를 참아야 하는 사회는 분명 정상이 아니다.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지 못해 생긴 분노는 반드시 풀어야 한다. 분노해야 할 때 분노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몸에 돋는 칼날로 분노를 표현하는 발상은 참신하지만, 그 칼날이 너무 무딘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충남대 교수·드라마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