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한국은 제2의 고향”이라고 말하는 폴 포츠는 사진을 찍기 위해 포즈를 취해 달라고 주문하자 ‘치즈’가 아니라 ‘김치’라 말하며 웃음 지었다. 김선규 기자 ufokim@munhwa.com

英 오페라 가수폴 포츠

“새벽 1시에 인터뷰를 할 수 있나요.”

정규 4집 앨범 ‘홈(Home)’을 발표하고 내한 콘서트를 위해 한국을 찾은 영국 오페라 가수 폴 포츠(44)에게 인터뷰를 요청하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짧은 내한 일정이라 이미 스케줄이 꽉 채워져 있지만 새벽에는 인터뷰가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단순히 영국과 시차 때문에 잠이 오지 않아서는 아니다. 서울의 밤거리를 좋아한다는 그는 새벽이 되면 혼자 카메라를 들고나와 강남의 밤풍경을 렌즈에 담는다. 새벽 인터뷰가 성사되진 않았지만 시간을 쪼개 7일 폴 포츠가 묵고 있는 서울 강남의 한 호텔 커피숍에서 그를 만났다. 지난 2007년 영국 ITV 오디션 프로그램 ‘브리튼스 갓 탤런트’에 출연해 스타덤에 오른 후 벌써 일곱 번째 한국을 찾는다는 그는 “나는 한국을 좋아한다”며 인터뷰 내내 유쾌한 웃음을 지었다.

―한국의 밤거리를 좋아한다고.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데 한국은 아름다운 곳이 참 많다. 서울 외에도 부산, 속초, 제주 등 많은 곳을 다녀왔다. 특히 서울은 활동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곳이다. 속초의 풍경도 기억에 남는다. 해가 질 때쯤 청호대교를 건너며 사진을 찍으면 정말 아름다운 장면이 나온다. 한국은 내게 두 번째 고향과 같은 곳이다.”

―새 앨범의 제목이 ‘홈’이다. 이 앨범을 발표한 직후 내한 공연을 잡은 것도 특별한 의미가 있나.

“그렇다. 벌써 한국에 일곱 번째 방문한다. 그래서인지 굉장히 편안하다. 경호원도 없이 혼자 다닌다. 그만큼 한국은 안전한 나라다. 이번 앨범 수록곡들은 부를 때마다 집에 있는 듯한 따뜻한 느낌을 받아서 ‘홈’이라 제목을 붙였다. 한국 역시 나의 친정집 같은 곳인 만큼 이번 앨범을 꼭 소개하고 싶었다.”

―거리를 다니면 알아보는 이들이 많나.

“많은 이들이 쳐다보지만 정작 다가와 말을 거는 이들은 많지 않다. 혼자 다니니 더욱 ‘폴 포츠가 아니겠지’라고 생각하지 않겠나(웃음). 주변 사람들은 항상 조심히 다니라고 이야기하지만 경호원이 필요한 경우는 거의 없다. 혼자서 강남 커피숍에 앉아 여유를 즐기는 건 멋진 일이다.”

―폴 포츠라는 벽안(碧眼)의 외국인이 느끼는 한국은 어떤 곳일까.

“많은 이들이 삼성, LG, 현대 등 유명 브랜드를 통해 한국을 알고 있다. 분명 한국은 산업적으로 크게 발전한 나라다. 하지만 결코 그게 다는 아니다. 한국에 올 때마다 나는 새로운 아름다움에 눈을 뜬다. 경치나 분위기뿐만 아니라 한국인을 통해 좋은 기운을 얻고 있다. 한국인들이 나를 어떻게 느낄지 모르겠지만 내게 한국인들은 낯설지 않다.”

―한국의 ‘한(恨)’이라는 정서에 관심이 많다고 들었다.

“맞다. 나의 노래를 듣고 있는 한국인들을 보면 어떤 간절함과 절실함이 느껴진다. 마치 노래를 통해 나와 하나로 연결되는 느낌이다. 누군가가 나중에 이것을 ‘한’이라고 가르쳐줬다. 내가 생각할 때는 아마도 한국은 분단국이기 때문에 이런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나를 향해 환하게 웃어주고 친절하게 대해주는 그들의 가슴 한쪽 어딘가에 분단으로 인한 아픔이 존재하는 것 같다.”

―올해 초에는 당신의 삶을 소재로 한 영화 ‘원챈스’가 개봉되기도 했다. 세상 사람 모두가 당신의 이야기를 안다. 그런 스타가 된 기분이 어떤가.

“낯설고 부끄럽다. 난 내가 대단한 사람이라 생각해본 적이 없다. 다만 남들보다 운이 좋아 사람들이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 조심스럽다. 한번은 미국에서 영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내가 먹은 음식물을 담았던 접시를 승무원에게 가져다줬는데, 이를 본 사람들이 ‘승무원들이 제대로 일을 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내가 괜히 승무원들에게 피해를 준 셈이다. 이렇듯 내 행동 하나하나가 의도치 않게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기 때문에 유명해진 후에는 더욱더 행동을 조심스럽게 하려고 한다.”

―최근 KBS 2TV ‘불후의 명곡’에도 출연했다는 소식을 들었나. 어땠나.

“정말 좋았다. 내가 부른 노래도 좋았고, 함께 노래를 부른 임태경도 실력이 대단했다. 관객들의 반응 역시 뜨거웠다. 이런 무대가 매주 열린다는 사실이 놀랍다. 임태경은 ‘불후의 명곡’을 녹화하며 처음 만났는데 뛰어난 그의 실력에 반했다. 그런 무대에 설 수 있어서 영광이다.”

―이번에 트로트를 부른다는 것이 화제가 됐다. 한국의 트로트라는 장르에 대해 알고 있었나.

“나훈아의 ‘사랑’을 불렀다. 이 노래의 장르가 트로트라는 건 몰랐다. 하지만 장르는 중요치 않다. 그냥 다 ‘음악’이다. ‘사랑’을 내가 직접 선곡하진 않았다. 출연 섭외를 받고 이 노래를 제안받았는데 멜로디와 비트가 좋아서 꼭 불러보고 싶었다. 가사도 마음에 와닿아서 정말 재미있게 불렀다.”

―오디션 프로그램 우승 이후 벌써 7년의 세월이 흘렀다. 한국에서 ‘인생역전’의 아이콘으로 불린다는 것을 알고 있나.

“잘 알고 있다. ‘브리튼스 갓 탤런트’에서 우승한 건 기적 같은 일이었다. 그로 인해 휴대전화를 팔던 나의 인생도 바뀌었다. 나의 이야기가 한국을 포함해 세상 누군가에게 희망을 전한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꿈을 꾸며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인생역전의 기회가 올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한국에도 여러 오디션 프로그램이 있고, 이를 통해 가수의 꿈을 이룬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나.

“물론이다. ‘슈퍼스타 K’ ‘코리아 갓 탤런트’ ‘케이팝 스타’ ‘스타킹’ 등 다 알고 있다. 최성봉(2011년 tvN ‘코리아 갓 탤런트’ 준우승자)과는 스페인의 한 무대에서 만나 ‘넬라 판타지아’를 함께 부른 적이 있다. 이런 프로그램은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한 이들에게 기회를 준다는 측면에서 훌륭하다.”

―반면 ‘오디션 스타’라는 수식어가 뛰어넘어야 하는 꼬리표가 되기도 하지 않나.

“나는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이라는 것이 자랑스럽다. 모든 일에는 계기가 필요한데 ‘브리튼스 갓 탤런트’는 나에게 좋은 계기이자 기회가 됐다. 이 프로그램은 내게 도약의 발판이 됐지 장벽이 된 적은 없다.”

―평범한 일상에서 벗어나 하루아침에 스타가 된다는 건 어떤 기분인가.

“마냥 좋진 않다. 나는 부끄러움을 타는 편이기 때문에 누군가 나를 알아보고 찾는다는 것에 적응하기 어려웠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받으며 산다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이다. 유명인이 되면 대중이 원하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지만 그게 쉽지 않다. 나는 나의 모습 그대로 살아가고 싶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도 그것이 직업이 되면 힘들어진다는 말이 있다. 가수가 된 후 노래에 대한 생각이 바뀌진 않았나.

“전혀 그렇지 않다. 세상 모든 일은 쉽지 않고, 그래서 열심히 해야 한다. 하지만 그 일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면 충분히 즐거울 수 있다. ‘가수 폴 포츠’로 살아온 지 7년이 넘었는데 아직 나는 마냥 좋다. 그래서 이렇게 세상을 돌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