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지난 1일 제주 서귀포시 강정마을 해군기지 공사장 정문 앞에서 해군기지 건설 반대운동을 벌이고 있는 한 신부가 경찰에 의해 의자째로 들려나오고 있다. 김선규 기자 ufokim@munhwa.com

지난 3일 제주 서귀포시 강정마을 해군기지 공사장 정문 앞에서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문정현 신부 등 천주교 사제들과 활동가들이 모여 ‘해군기지 건설 반대 미사’를 열고 있었다. 사제들과 활동가들은 공사현장 입구에 의자를 두고 앉아 ‘민군복합항 사기극’ ‘군사기지 없는 비무장 평화의 섬 강정’ 등의 현수막을 들고 공사장에 출입하는 차량을 막아서고 있었다.

대기하고 있던 경찰 병력은 차량 출입을 막는 이들을 향해 “형법 314조 업무방해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며 길을 터 줄 것을 요청했다.

1시간 가량 진행되는 미사 중간 경찰은 수차례 사제들과 활동가들을 의자째로 들어 입구 한편으로 옮겼고, 길이 확보된 5분 동안 10여 대의 공사차량이 현장을 드나들 수 있었다. 매일 오전 11시부터 12시까지 강정마을에서는

이 같은 진풍경이 반복되고 있다. 공사가 약 62% 가량 진행돼 완공을 1년여 앞두고 있지만 공사장 앞의 시위대와 멈춰선 덤프트럭, 경찰 병력은 8년째 진행 중인 제주 해군기지 갈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강정마을은 지난 2007년 제주 해군기지 예정지로 결정됐다가 외부세력이 개입하면서 극렬한 반대 투쟁의 장이 됐다. 외부세력들은 국가 안보에 대한 필요성이 아닌, ‘환경 문제’와 ‘전쟁 반대’를 내세우며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했다.

심지어 당시 제주해군기지 이전 반대를 위해 전국 각처에서 몰려든 활동가들은 이제는 마을에 이주민으로 자리잡게 되면서 현재 강정마을의 또다른 반목과 갈등의 한 축이 돼 버렸다.

◆전형적 입지갈등=제주 해군기지 건설 갈등은 2007년 5월 김태환 당시 제주도지사가 강정마을을 해군기지 최우선 대상지로 선정하며 시작됐다. 같은 해 8월 강정마을회는 주민투표를 통해 해군기지 유치반대를 결정했다.

이에 정부는 2014년까지 1조300억 원을 투입해 전투함 20여 척과 15만t급 크루즈선 2척이 동시에 정박할 수 있는 대규모의 ‘민군복합형 항만’을 건설한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주민 반대는 변함 없었다. 마을 주민과 정부 사이 해결되지 않은 갈등의 골이 깊어지다가 2012년 3월 강정마을의 상징적 존재인 구럼비바위 폭파와 함께 갈등은 크게 증폭됐다. 강정마을회는 “주민의 참여가 무시된 정부의 해군기지 건설 무효”를 주장하며 집단적 반대행동을 전개했고, 정부는 해군력 증강을 통한 안보강화 논리를 근거로 강정마을에 해군기지 건설을 예정대로 진행하고 있다.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첨예한 대치=제주 해군기지 갈등이 8년 동안 지속되며 장기화된 이유로, 전문가들은 정부와 주민들이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 차이를 첫손에 꼽았다.

심준섭 중앙대 공공인재학부 교수의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둘러싼 지역 주민과 공무원의 갈등 프레임 비교분석’ 논문에 따르면 정부는 주민들의 반대를 공공선과 국가적 이익에 반하는 지역이기주의 및 막대한 사회적·경제적 비용이 발생하는 ‘정책적 골머리(Policy Headaches)’로 규정하고 2013년 말까지 반대운동을 벌이는 600여 명을 체포, 연행하는 등 강력 대응했다. 정부는 해군기지 갈등을 이해갈등(Interest Conflict) 측면에서 접근했으며, 강정마을 주변 의료원 현대화, 교육시설 개선 등 지역 발전 보상책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그러나 강정마을 주민들 대부분은 해군기지 반대가 님비(NIMBY)현상 및 지역발전을 위해 보상을 더 받으려는 행동으로 비쳐지는 데 대해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주민들은 해군기지 입출 항로가 각종 천연기념물과 환경보전 지역을 관통하고, 해군기지 입지가 섬 남쪽 돌출 지역으로 태풍과 해일 피해가 심해 반대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강정마을 주민 김모(80) 할머니는 “미군 배가 들어오는 것도 아닌데 해군기지 자체를 무작정 반대하는 것이 아니고, 들어오면 안 될 곳에 건설되는 것을 막기 위해 싸워온 것”이라고 말했다.

◆명분싸움으로 바뀐 갈등=강정마을 대부분의 주민들도 해군기지 계획이 전면 재검토되는 데에는 기대를 걸고 있지 않다. 2012년 강정마을 주민들이 국방부 장관을 상대로 낸 국방·군사시설 사업실시계획 승인처분 무효확인 소송 상고심에서 대법원이 최초 승인과 변경승인 모두 유효하다며 해군기지 적법 판결을 내리며 반대할 ‘명분’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이제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제시한 진상조사위원회를 통해 입지 선정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다는 점을 입증, 명예를 회복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앞서 지난 9월 22일 원 지사는 해군기지 입지 선정부터 공사 과정에서 제기됐던 각종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진상조사위 설치를 골자로 하는 안을 주민들에게 제시했다. 고권일 강정마을회 부회장은 “사실상 해군기지 계획을 취소하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에서 진상조사를 통해 절차상 문제와 책임소재를 가려야 한다”며 “관건은 진상조사의 범위와 효력 등을 확실히 보장받는 것으로, 도와 협의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토박이 주민과 이주주민 간 갈등=진상조사를 통해 명예회복을 노리는 강정마을의 마지막 걸림돌은 토박이 주민들과 이주 주민 사이의 의견차이다. 강정마을회는 9월 30일 원 지사의 해군기지 진상조사위 설치 수용 여부를 두고 마을 총회를 열었으나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이날 총회에서 토박이 주민들이 주축인 찬성측은 “해군기지를 둘러싼 각종 조사가 불신을 초래한 만큼 주민과 행정, 도의회가 참여하는 진상조사위 설치를 수용해야 의미 있는 진실을 밝혀내고, 명예를 회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주 주민들이 주축이 된 반대측은 “진상조사가 이뤄져도 법적으로 대응하거나 효력을 가질 권한이 없다”며 “진실을 규명해도 입지 재선정이나 공사 중지 등 중대한 결정을 되돌리지 못하는 진상조사는 한계가 있다”는 입장으로 맞서고 있다.

감정이 격화된 가운데 찬성측은 강정마을로 주민등록을 옮긴 활동가들이 회의를 주도한다며 불만을 제기, 총회 의결권을 가진 주민의 거주 연한을 기존 2년에서 5년으로 늘리자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앞서 환경단체 등에서 시민운동을 벌여온 활동가 30여 명은 2011년부터 주소지를 강정마을로 옮겨 생활하며 강정마을 주민이 됐다.

강정마을 토박이 홍모(56) 씨는 “갈등 초기 강정마을 주민들을 도와준 활동가들의 노력에는 고마운 마음이지만 이들의 활동이 변질돼 밀양송전탑, 오키나와(沖繩) 해군기지, 세월호특별법 등 다른 이슈와 연계하는 것은 문제 해결을 지연시키는 것”이라며 “우리 주민들도 세월호 참사, 송전탑 문제 등이 가슴 아프지만 8년간 가족과 이웃이 완전히 해체된 우리마을 문제 해결을 위해 집중했으면 한다”고 주장했다.

강정마을회 고 부회장은 “일부 주민들 사이에 다른 의견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내주 총회를 통해 통일된 의견을 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제주 = 김대종 기자 bigpaper@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