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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회평/논설위원

명절 때마다 선호하는 선물 1위에 매번 오르는 품목은? 상품권이다. 3조 원대로 예상되는 올 추석 선물시장(市場)에 풀리는 상품권도 1조 원어치를 넘을 것이라고 한다. 주종은 물론 백화점 상품권이지만, 현재 국내에서 이런저런 이름으로 팔리는 상품권은 200종이 넘는다. 종이로 된 상품권의 95%가량은 돈처럼 한국조폐공사가 찍어낸다. 그게 지난해 8조2794억 원어치, 여기에 여타 상품권·모바일 상품권을 더하고 성장세를 감안하면 올해 상품권 시장은 10조 원이 너끈하다.

시장에서 상품권의 위상은 독특하다. 액면가만큼 자유롭게 쓸 수 있으니 화폐와 다를 바 없다. 그러면서 수요에 따라 거래가격이 달라지는, 상품으로서의 성격도 지닌다. 예컨대 10만 원짜리 롯데상품권의 시중 유통가격은 9만6000원 안팎으로 지난 설보다 조금 올랐다. 상품권 시세엔 경기·세태 흐름이 숨어 있다. 지난해 백화점 상품권 판매액의 3분의 1, 1조8000억 원어치가 50만 원권이었다.

상품권은 거래 당사자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 발행하는 쪽은 무이자 현금 차입 효과를, 구매자는 사전 세일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과도한 상품권 발행은 독(毒)이 된다. 구두상품권은 1990년대 중반 백화점 상품권 등장 전엔 독보적 존재였다. 국내 제화업계는 수요와 무관하게 과거 방식을 고집하다 극심한 경영난을 자초했다. 구두상품권의 시중 할인율이 30%대에 이를 정도였다.

요즘엔 온누리상품권을 두고 뒷말이 많다. 전통시장을 살린다는 취지로 2009년 도입됐지만, 엉뚱한 곳으로 돈이 새고 있다. 지금 30만 원권의 현금 구입가는 27만 원이다. 남의 이름으로 사서 곧장 3만 원 차익을 남기는 사례가 비일비재다. 상품권의 70% 이상은 기업·공공기관이 ‘권유’받아 사고, 직원들에게 나눠준 상품권은 곧장 할인된 매물로 나온다. 상인들도 상품권을 썩 반기지 않는다. 정부가 상품권을 쓰라고 만든 온라인 쇼핑몰엔 외국산 제품이 판친다. 시장 수요를 거스른 후유증이다.

노대래 공정거래위원장이 며칠 전 ‘카카오 상품권’ 제재를 시사했다. 카카오가 SK플래닛 등 기존 모바일 상품권 사업자들을 배제하고 직접 시장으로 뛰어든 것이 발단이다. 위세 높던 대기업들이 중소 규모의 카카오에 “갑(甲)의 횡포”라고 항변하는 양상이다. 모바일 상품권은 하루가 다르게 기존 시장을 대체해가는 중이다. 다양한 상품권이 범람해도 결국 시장의 문법에 따라 움직이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