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만 명에 달하는 주거빈곤아동이 오늘도 열악한 환경 속에서 안전과 생명을 위협받고 있지만, 우리 경제적 규모 등에 비해 이들 주거빈곤아동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는 여전히 미흡한 실정이다.

◆유명무실한 ‘최저주거기준’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는 것은 강제성이 없는 최저주거기준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2003년 주택법상 최저주거기준을 처음으로 도입했다. 그러나 이들 최저주거기준 미달 가구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의무 조항이 아니다. 따라서 당연히 최저주거기준 미달 가구에 대해 지원 방식을 규정한 하위 법률도 존재하지 않는다.

2000년부터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 따라 ‘주거급여’ 형태로 정부가 임대료를 보조하고 있지만, 기초생활수급자에게만 지원되는 데다 금액도 턱없이 부족하다. 정부가 주도하는 주택개량 지원사업의 경우에도 농어촌가구·자가소유자 등에게만 혜택이 돌아가고 있다.

◆선진국 ‘아동 중심 주거정책’=미국이나 영국은 19세기 후반부터 최저주거기준을 도입했으며, 선진국 대부분이 아동의 주거복지를 위한 보호 장치를 법률적·제도적으로 마련해 놓고 있다. 미국 정부는 ‘주거 바우처’ 제도를 통해 한 가구의 소득에서 주거비로 지출되는 비용이 30% 이상을 차지할 경우, 초과되는 부분에 대해 바우처를 지급해 주고 있다.

국내 임대료 보조정책과 비슷해 보이지만, 미국은 임대한 집이 최저주거기준에 부합한 경우에만 바우처를 지급하는 등 저소득층도 최소한의 질이 보장되는 주택에서 살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 2004년 주택법 개정을 통해 ‘주택의 건강과 안전에 대한 영향평가체계(HHSRS)’를 도입, 아동에게 치명적인 29개의 위험요소를 분류하고 아동이 있는 가구가 기준에 위반되는 집에 거주할 시 강제 퇴거명령까지 내릴 수 있도록 했다.

◆“임대주택 공급 확대해야”=이렇듯 열악한 아동주거 실태를 개선하기 위해 전문가들은 강제력 있는 최저주거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연구위원은 “현재 주택법상 최저주거기준은 조항만 존재하고 집행력이 없어 유명무실한 상태”라며 “최저주거기준을 구체화한 뒤, 미달하는 주거에 대해서는 법률적으로 제재를 가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세희(사회복지학) 서울사이버대 교수도 “구체적으로는 기초생활보장법에 따라 제공되고 있는 주거급여를 최저주거기준과 연동시켜 운용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며 “민간 임대차계약에서 임대인이 질이 떨어지는 주택에 과도한 주거비를 요구할 경우 정부가 나서 제재할 수 있는 법적 근거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또 “선진국의 경우 임대아파트 비율이 전체 주택의 8∼20%에 달하지만, 우리나라는 3%에 불과하다”며 “질 좋은 임대주택을 확대 공급해 시장 균형을 맞추는 것도 고려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주거복지 기본법’을 대표발의한 이미경 의원은 “주거빈곤아동을 위해 가장 시급한 방안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주거복지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체계적인 수급시스템을 만들도록 한 주거복지 기본법을 제정하는 것”이라며 “‘아동의 빈곤예방과 지원 등에 관한 법률’에 빠져 있는 주거환경 개선 분야를 포함시키는 법 개정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다영 기자 dayoung817@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