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2009년 8월 경기 남양주시 진전읍 장현리 류기봉 시인의 포도밭에서 열린 제12회 포도밭예술제에 참여한 문인들이 시를 수놓은 광목천을 펼쳐보이고 있다. 왼쪽부터 이수익, 류기봉, 정현종, 조정권, 박주택, 심언주, 이덕규, 차주일 시인. 포도밭예술제추진위원회 제공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시절이었던 1998년, 시인 김춘수(1922∼2004)가 제자인 류기봉(49) 시인에게 예술제를 열어보자고 제안했다. 포도밭이 아름다운 프랑스의 한 작은 마을에서 포도나무에 시와 그림을 걸고 공연을 펼쳐 관광객을 유치하는 모습을 본 뒤였다. 마침 류 시인은 작품 활동을 하면서 포도밭을 일구고 있었다. 류 시인은 “김춘수 선생이 ‘IMF로 농민들이 힘든 때에 시·그림·음악이 어우러진 예술제를 열어 마음을 치유하고 관광객까지 모을 수 있다면 지역경제에도 보탬이 되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셨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렇게 포도밭예술제는 그해 가을 포도 수확철에 맞춰 경기 남양주시 진전읍 류 시인의 포도밭에서 조촐하게 시작됐다. 동료 문인들이 광목천에 쓴 시를 포도나무에 걸었고, 미술작품 몇 작품도 전시했다. 주민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작은 음악회도 열었다. 김 시인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매년 포도밭 예술제에서 시를 낭송했고, 문학 강연을 하는 등 남다른 애정을 보였다. 올해로 17회째를 맞는 포도밭예술제는 이제 300여 명의 사람들이 찾는 남양주의 대표 문학축제로 자리 잡았다.

오는 30일 열리는 이번 포도밭예술제는 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올해 김 시인이 영면한 지 10주기를 맞아 시인을 기리는 자리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포도밭에는 김 시인의 시집, 시론집, 수필집, 친필편지 등과 함께 1959년 발표한 그의 다섯번 째 시집 ‘꽃의 소묘’의 탈고 과정을 볼 수 있는 필사본 노트가 전시된다. 꽃의 소묘에는 김 시인의 대표작 ‘꽃’ ‘능금’ 등이 실려 이들 시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그 과정을 엿볼 수 있다.

후배 문인들이 김 시인을 추억하는 시간도 가진다. 심언주 시인은 김 시인의 ‘꽃’을 낭독하고, 노향림 시인은 헌시 ‘대여 김춘수’를 읊는다. 박주택(국어국문학) 경희대 교수는 ‘김춘수의 문학세계’에 대해, 이승하(문학창작) 중앙대 교수는 ‘농업과 생태 그리고 시’에 대해 발표할 예정이다.

포도나무에는 이전과 같이 포도나무 시와 그림, 사진 등이 걸리고, 싱어송라이터 김희진 씨 등이 참여하는 작은 음악회도 포도밭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문인들과 일반인 참가자들은 다양한 문화행사와 함께 유기농 포도, 포도식초 등을 맛볼 수 있다. 류 시인은 “시와 미술, 음악 그리고 포도, 풀, 벌레, 새 등 문화와 자연이 어우러진 축제”라며 “올해는 김춘수 선생이 예전처럼 함께한다는 생각으로 예술제를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포도밭예술제가 끝난 31일부터 9월 20일까지는 포도 따기 등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포도밭 체험행사도 열린다. 자세한 내용은 포도밭예술제 홈페이지(http://blog.naver.com/poetpodo)에서 확인할 수 있다.

유민환 기자 yoogiza@munhwa.com

이미지 크게보기 김춘수(가운데) 시인이 2000년 6월 열린 제3회 포도밭예술제에서 강연을 하던 모습.

이미지 크게보기 포도밭과 어우러진 미술, 사진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