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특별법이 유가족의 반대에 부딪혀 국회 입법이 장기 지연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새정치민주연합이 연일 박근혜 대통령을 협상장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입법부 고유 권한 사항에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을 개입시키려는 것은 입법부의 책임을 스스로 방기하는 것이라는 비판과 함께 3권 분립이라는 헌법 질서에도 위배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더구나 박 대통령의 통치스타일을 ‘만기친람(萬機親覽·임금이 모든 정사를 친히 보살핌)’식이라고 비판한 바 있는 야당이 정국이 불리할 때나 책임을 떠넘기려 할 때 툭하면 대통령의 개입을 요청하는 것 또한 모순된 행동이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박영선 새정치연합 국민공감혁신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22일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40일간 단식농성을 벌이던 ‘유민 아빠’ 김영오 씨가 병원으로 이송된 것과 관련, 박 대통령에게 김 씨를 만날 것을 거듭 촉구했다.

박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박 대통령이 만나주면 단식을 중단하겠다는 유민 아빠의 간절함에 이제 생명을 살린다는 생각으로 박 대통령이 답할 때”라고 말했다. 박 원내대표는 지난 20일에도 광화문 단식농성장을 찾아 박 대통령이 김 씨를 만날 것을 강조한 바 있다. 최근 김 씨와 함께 단식을 해온 문재인 의원도 지난 21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을 통해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뭐하고 있습니까. 당신들이 책임지고 당신들이 수습해야 할 일입니다”라고 압박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세월호특별법은 국회가 해결해야 할 몫”이라고 선을 긋고 있다. 새누리당 핵심 관계자는 “야당이 ‘만기친람’이라고 비판할 때는 언제이고 이젠 대통령에게 매달리기만 하느냐”면서 “국회와 정당의 권한을 방기하는 새정치연합의 처지가 서글프다”고 했다.

이정희(정치학) 한국외대 교수는 “대한민국의 정부 형태인 대통령중심제란 대통령이 모든 것을 다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입법과 행정이 상호 견제한다는 게 골자”라며 “사사건건 대통령의 개입을 강조하는 지금의 정치권은 이런 기본적인 정치 철학도 부족하고 자율성 또한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이 같은 야당 행태에 대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이 집권 여당으로서 리더십을 보여줄 때라는 목소리도 여권 내에서 나오고 있다. 집권 여당으로서의 포용력에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지적이다. 우세해지고 있는 국민 여론을 등에 업은 새누리당이 사실상 ‘꽃놀이패’를 쥐고 여유롭게 팔짱만 끼고 있는 게 아니냐는 비판론도 나온다. 여야를 막론하고 이른바 ‘퉁’(떠넘기기) 싸움을 하면서 대한민국 국회의 정치가 실종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는 대목으로 보인다.

지난 20일 새누리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도 “더 양보하자”는 중진들의 주문이 쇄도한 바 있다. 전 국회의장인 강창희 의원은 “나라를 끌고 이끌어가는 여당으로서의 역할은 항상 참고, 더 기다리고, 더 양보하는 것이 옳은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재오 의원은 “유가족이 (특검추천위원회에 위원 후보를) 추천해줘서 여당이 동의하게 되면 결국 추천의 결과는 여당이 하는 꼴”이라면서 야당과 유가족의 동의하에 여당이 2명을 추천하기로 한 세월호특별법 합의안을 사실상 뒤집을 것을 주문했다.

김만용·현일훈 기자 my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