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옛 서울역사를 개조한 복합문화공간인 문화역서울284, 옛 기무사터에 들어선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지하상가에 자리 잡은 신당창작아케이드는 리모델링 후 서울의 문화명소가 됐다. 버려진 유휴공간을 되살리고, 쇠락한 역사적 건물을 현대 일상의 공간으로 변모시킨 사례들이다.서울뿐 아니라 지역에서 도심 재생사업의 일환으로 낡은 건물을 개조한 문화재생프로젝트가 활기를 띠고 있다. 연초제초창 창고에서 문을 연 대구예술발전소, 옛 공장건물에 들어선 경기 안양 김중업박물관과 전시장 같은 식품회사 샘표의 경기 이천공장과 충북 오송 연구소 등. 용도 폐기되면서 삭막하던 과거의 공간은 문화예술과 더불어 예술가의 창작공간이자, 지역주민뿐 아니라 외지 사람도 찾아와 즐기며 소통하는 개방형 문화예술공간으로 변신했다.

2009년 개관한 인천아트플랫폼은 인천 중구 해안동 개항기 근대건축, 천장 높은 창고 등을 개·보수한 복합문화예술공간이다. 지역 근대건축 공간의 가치를 보존하고 지역 활성화라는 큰 틀 아래 건물의 기본 구조와 내부공간을 원형대로 유지하며, 복원보다 보수에 비중을 둔 리모델링을 거쳐 완공됐다. 13개동 건물에선 공연, 전시, 공방, 예술인 레지던시 등의 사업이 펼쳐진다. 건축가 황순우 씨가 총괄진행을 맡아 리모델링의 큰 그림을 그렸고, 인천문화재단이 운영을 맡고 있다.

식품회사 샘표의 경기 이천 간장공장과 충북 오송 발효전문연구소는 건물 안팎이 현대미술 전시장 같다. 젊은 예술가들이 참여한 아트프로젝트를 통해 우중충한 공장의 회색벽이 유쾌한 벽화의 공간으로 바뀌었다. 또 무미건조한 연구소 안팎은 상상력과 창의력을 일깨우는 ‘감성 공간’으로 분위기가 새롭다.

이 같은 ‘예술로 공간 재창조’ 사업은 21세기 들어 경제성장형 산업시대에서 문화와 더불어 도시경쟁력을 높이고 도시를 활성화하는 ‘문화의 시대’를 지향하는 사회 흐름과 맥을 같이한다. 2000년대 초반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역근대산업유산 예술창작벨트화 사업’ 이후 서울시가 ‘문화서울’을 지향하며 도심 재개발과 예술가 지원을 겸한 예술재창조 사업 등을 적극 추진한 것이 2000년대 중반이다.

산업구조의 재편으로 쇠락한 탄광·제철도시, 용도 폐기된 공장 창고 등이 문화예술과 더불어 새롭게 되살아난 해외 성공사례를 본보기 삼아 국내서도 2000년대 중후반 들어 문체부, 지방자치단체 등이 주도하는 사업이 전국 각지로 확산됐다.

스페인 빌바오미술관, 영국 런던 테이트모던을 비롯, 독일 루르의 촐페라인, 일본 요코하마(橫濱)의 뱅크아트와 중국 베이징(北京)의 타산쯔798문화예술촌 등. 기존 공간의 가치를 보존하고 문화적으로 활용하면서 도시 재생을 이뤄낸 해외의 사례들은 국내서도 유효한 실험이고 도전이었다.

서울문화재단 초기 도심문화재생프로젝트를 이끈 안호상 국립극장장은 “도심 유휴공간의 활성화는 예술가에게 창작공간을 제공하고 주민에게 문화 향유의 기회를 제공하는 등 지역문화와 경제의 활성화라는 점으로도 그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예술로 공간 재창조’ 사업은 2000년대 중반 도입기를 거쳐 현재는 부분적으로 결과가 나고 있는 과도기”라고 평가했다.

조광호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연구원은 “건물 리모델링 같은 하드웨어 부분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으며 프로그램과 운영 등 소프트웨어의 안정화를 모색하는 시기”라고 지적했다. 조 연구원은 하드웨어 구축에 10년, 안정화에 10년 등 해외의 ‘10+10 전략’ 사례를 지목하며 공간과 장소의 조성과 더불어 이를 적절하게 기획하고 지속적으로 컨트롤하는 건축가 총괄기획자의 역할을 일깨웠다. 공공기관을 비롯한 사업의 주체는 원활하고 지속적인 사업을 위해 유명인보다 ‘지역을 잘 아는 전문가’ 등 전문인력을 발굴 확보하고, 간섭 지시보다 지원 등 매개자로서 총괄기획자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것.

김노암 문화역서울284 예술감독은 “건물 같은 하드웨어에 지우친 예산 책정에서 벗어나 콘텐츠 확보 등 운영비의 비중이 강화돼야 한다”고 밝혔다. 또 이들 문화재생 공간이 대부분 복합문화공간을 지향하지만, 자칫 사업이 중복되거나 모호해질 수 있다는 점에서 프로그램 내용과 대상을 명확히 하는 세분화 방안도 제시됐다.

관계자들은 “건물 리모델링에 집중하고 그 후 운영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예산 배정에 소홀하기 쉽다”며 “사업 계획단계에서 장소와 시설뿐 아니라 콘텐츠 운영에 대한 지원과 예산이 확보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세미 기자 ssemi@munhwa.com
<문화체육관광부 공동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