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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호/경희대 교수·정치학

인권의 중요성을 누가 부정하랴. 아무리 주위 사람과 어울리지 못하는 관심병사라도 존엄한 인권을 갖고 있다. 아무리 잘못을 저지른 용의자·피의자·범죄자라도 인권을 보장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인권침해가 벌어진 조직 자체를 통째로 불신하고 욕해선 곤란하다. 특히, 군(軍)과 경찰처럼 사회질서와 국가 안위를 지키는 기관은 부분적 인권 논란에도 불구하고 권위를 잃지 말아야 한다.

미국 경찰이 최근 인권침해 문제로 곤혹스러워하고 있지만 조직 자체의 신뢰까지 훼손된 것 같지는 않다. 며칠 전 ‘워싱턴포스트’가 이에 대한 흥미로운 기사를 실었다. 미주리 퍼거슨시에서 강도 용의자인 10대 흑인 청년 마이클 브라운이 경찰 총격에 사망한 후 여기저기서 항의 시위가 벌어지고 있지만 사회 전반의 넓은 지지를 얻지 못하고, 특히 정치인들의 개입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동조 시위와 소요는 주로 소수 인종집단 내에 머물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해 몇몇 정치인이 일반론 차원에서 인권을 강조했지만 경찰 조직에 직접 책임을 묻는 발언은 삼가고 있다.

용의자에 대한 미국 경찰의 가혹행위가 구설수에 올랐던 과거의 여러 사례에서도 상황은 비슷했다. 가혹행위를 한 경찰 당사자가 책임을 져 징계를 당한 경우에도 경찰 조직이 싸잡아 비판받는 정도는 약했다. 1992년 로스앤젤레스에서 분노한 흑인들이 폭동을 일으킨 사건에서, 폭동의 직접적인 이유는 1년 앞서 로드니 킹이 백인 경찰에 구타당했기 때문이 아니라, 백인이 다수였던 배심원단이 그 가해(加害) 경찰에게 무죄 평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당시 백인 배심원들이 비난을 받고 배심원제의 맹점이 논쟁거리가 되고 여전한 인종차별이 개탄을 자아냈다. 하지만 경찰 조직 자체에 대한 비판은 사회와 정치권에서 금기(禁忌)시했다.

일반 국민의 여론상 미국의 경찰은 지속적으로 높은 신뢰를 누려 왔다. 갤럽 조사에 따르면 관련 조사가 실시된 1993년 이래 미국민은 군대와 경찰에 지속적으로 최고의 신뢰를 보내왔다. 군대는 신뢰도가 주로 70%대에 머물며 80%를 넘긴 적도 있고, 가장 최저였던 때에도 60% 아래로 내려가지 않았다. 경찰은 군대보다는 약간 아래지만 60% 전후의 높은 신뢰도를 기록했으며, 최저인 경우에도 50%는 넘겼다. 참고로, 의회 신뢰도는 최고로 오른 것이 기껏해야 30%였고 계속 떨어져 최근에는 7%로 추락한 상태다.

국민의 신뢰를 받고 있는 경찰을 불신(不信) 대상인 정치인이 함부로 비판하기는 힘들다. 가혹행위에도 불구하고 경찰 조직에 삿대질을 하긴 조심스럽다. 오히려 부메랑이 돼 정치인의 입지를 좁히고 차기 선거 전망을 어둡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곧잘 내부 문제가 불거지는 군도 마찬가지다. 높은 신뢰를 받는 군 조직 전체를 비난하기엔 정치적 부담이 너무 크다. 이처럼 정치권의 개입이 없는 상황에서 각종 논란은 국지적 수준을 넘어서기 힘들다.

한국의 상황은 미국과 대조를 이룬다. 대한민국의 경찰 조직은 신뢰 대상이라기보다는 불신의 대상이다. 2011년 특임장관실 조사에 따르면 경찰 신뢰도는 국회 신뢰도와 똑같을 정도로 매우 낮다. 세월호 사건의 여파에다 유병언 미스터리가 겹치면서 불신은 더 깊어졌다. 아산정책연구원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군의 신뢰도는 비교적 괜찮은 수준이다. 하지만 최근의 병사 폭력행위와 자살 사건 등으로 심하게 추락했을 것이다. 이러니 경찰이나 군대에서 문제가 터질 때마다 여야 없이 정치인들이 즉각 나서 조직 자체를 맹공격하게 되는 것이다. 정치권의 집중 포화에 경찰이나 군대의 권위가 유지될 리 없고 권위를 잃은 조직에 제 기능을 기대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조직에 근본적 문제가 있다면 당연히 비판하고 고쳐야 한다. 그러나 가혹행위나 그밖의 문제가 터질 때마다 자세한 조사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너무 쉽게 조직 자체부터 비판하고 나서서는 곤란하다. 군과 경찰처럼 법과 질서를 지키는 기관이 권위를 세우지 못하고 본분을 다하지 못할 때 사회 전체의 안전과 인권은 누가 지키겠는가. 바로 이것이 인권침해 논란과 격렬한 흑인 소요 속에서도 권위를 잃지 않고 있는 미국 경찰이 부러워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