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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학용/논설위원

20년 전 세계인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었던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우리 엄마는 신발을 보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대요. 어디를 가는지, 어디를 갔었는지 말이에요.” 지능지수 75의 포레스트가 벤치 옆에 앉아 있는 한 할머니에게 엄마의 통찰력을 뽐내며 한 말이다.

영국 작가 아서 코난 도일의 추리 소설 ‘셜록 홈즈’에도 신발이 언급된다. 이 시리즈의 첫 작품인 ‘주홍색 연구’에 이런 글귀가 있다. “논리학자는 바다를 보거나 폭포 소리를 듣지 않고서도 물 한 방울만으로 그게 대서양이나 나이아가라폭포 어디 건지를 유추해낼 수 있다. 손톱, 신발, 셔츠의 소맷부리 등을 살펴보면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뻔히 드러난다.” 1970년대 안방극장을 접수했던 미국 TV 수사물 ‘형사 콜롬보’에도 신발이 등장한다. 늘 트렌치코트 차림의 콜롬보는 살인사건이 미궁에 빠질 때쯤이면 돋보기로 누군가의 신발을 들여다보며 실마리를 풀어나가곤 했다.

신발은 주인의 ‘정직한’ 흔적을 담고 있다. 그래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사관들은 범인 잡는 단초(端初)로 이를 애용한다. 이런 신발이 유병언 수사 와중에 팔자(?)에 없는 명품 심판대 위에 섰다.

전말은 이렇다. 경찰은 얼마 전 브리핑에서 “발견 당시 유 씨의 유류품 중 신발은 고가의 와시바 운동화”라고 밝혔다. 그러자 패션담당 기자들과 네티즌들이 들썩대기 시작했다. 생소한 브랜드명 때문이다. 어디선가 이 상표가 독일 스포츠업체 아디다스와 일본 디자이너 야마모토 요지가 함께 만든 ‘와시바(Washiba)’라는 주장이 불쑥 나왔다. 그러나 이 제품은 고가의 명품도 아니고, 유 씨 신발과 디자인도 달라 아닌 걸로 판명됐다. 결국 경찰이 신발에 적힌 ‘Waschbar’ 즉 ‘세탁 가능(washable)’이라는 뜻의 독일어 ‘바슈바르’를 영어식으로 잘못 읽어 일어난 해프닝으로 일단락됐다.

한숨 들이고 정밀 감정에 나선 검경이 이제야 유 씨 신발의 정체를 알아냈다. 정형외과적 접근과 해부학을 바탕으로 발이 편하도록 제작된 독일의 장인 브랜드 ‘핀 컴포트(Fin Comfort)’라는 것이다. 경찰은 “이 제품이 인터넷 쇼핑몰에서 48만5000원에 판매되는 걸 확인했다”는 말도 곁들였다.

그런데 왠지 씁쓸하다. 검경이 정작 해야 할 일은 유 씨 신발의 브랜드명을 밝혀내는 게 아니라 그 행적(行跡)을 추적하는 일일 터인데… 갑갑하고 답답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