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극심한 구직난 속에 취업을 바라는 구직자들에게 입사 조건을 내세워 개인정보를 빼낸 뒤 이를 대출 사기에 악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사진은 채용 박람회장에 모인 구직자들의 모습. 문화일보 자료사진

취업준비생 A(28) 씨는 올해 초 한 인터넷 구직사이트를 통해 해외 명품을 관리하는 B회사 사무직 아르바이트 면접을 봤다. A 씨는 아르바이트 채용 직후 주민등록등본·초본, 졸업증명서 등의 통상적인 서류를 회사에 제출했다. 그러자 B사는 회사에서 신용카드 겸용 보안카드를 만들어야 한다며 A 씨에게 신분증, 통장 사본, 공인인증서, 보안카드도 요구했다. A 씨는 아무 의심 없이 회사에 관련 자료를 제출했고, 심지어 휴대전화도 내줬다. 몇 시간 지나지 않아 A 씨는 본인 명의로 저축은행과 대부업체에서 수천만 원이 대출된 것을 알게 되었다.

취업준비생 C(여·27) 씨는 지난 6월 한 구인광고를 통해 카드발급 업무를 한다는 D무역회사에 취직했다. D사는 고객의 카드발급 업무를 위한 은행 신용조회 업무 권한을 얻기 위해서는 아이디를 발급받아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공인인증서, 보안카드, 신분증, 통장사본, 휴대전화 제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은행 신용등급을 높이기 위해 통장에 돈을 넣었다 뺐다 하면서 거래실적을 쌓아야 한다며 통장비밀번호도 요구했다. C 씨는 무역회사의 카드발급업무에 회사 직원의 은행신용도가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 수 없지만 D사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통장비밀번호도 넘겨줬다. 유령회사로 밝혀진 D사의 사기꾼 일당은 대출심사 과정에서 C 씨의 휴대전화를 이용해 C 씨를 사칭하는 등의 수법으로 저축은행 3곳과 대부업체 2곳에서 사기대출을 받아 도주했다. C 씨를 포함해 총 3명이 D사로부터 3000만 원 정도의 사기대출을 당했다.

일자리를 얻지 못한 ‘청년백수’가 넘쳐나는 요즘 젊은이들을 울리는 취업미끼 대출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경기불황으로 취업문이 자꾸 좁아지다 보니 청년 구직자들은 취업시장에서 약자로 전락하기 마련인데 이런 상황을 이용해 구직자들에게 공인인증서 등 개인정보를 입사 조건으로 내세워 부당하게 요구, 대출 사기에 악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이다.

30일 금융감독원 금융소비자보호처에 따르면 금감원은 지난 16일 취업희망자들을 대상으로 한 대출사기가 또다시 발생하고 있어 소비자 경보를 발령하고 추가 피해 예방에 나섰다. 취업대출사기란 취업 또는 아르바이트를 위한 면접과 입사 과정에서 회사가 공인인증서, 보안카드, 신분증, 통장 사본, 통장 비밀번호, 휴대전화 등을 요구한 뒤 개인정보를 이용해 몰래 전화와 인터넷을 통해 대출을 받아 편취하는 것을 말한다. 피해사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기범들은 청년 구직자들의 취업시장에서의 열악한 지위, 부족한 금융지식 및 사회경험 부족 등을 교묘하게 악용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금감원은 이 같은 취업 대출사기가 몇 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문제가 돼 왔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0월에는 가공의 증권선물투자회사가 구직자에게 취업조건으로 선물계좌 개설 자금을 대출받게 해 700여 명이 50억 원의 피해를 보았다. 2012년에도 구직자를 채용한 뒤 회사의 카드·보험 모집 업무를 위한다며 각종 정보를 제출받아 대출사기를 벌이는 등 취업을 미끼로 한 대출사기가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금감원은 취업조건으로 신분증사본, 공인인증서, 은행 보안카드 등을 요구하는 경우는 대출사기일 경우가 많으니 일단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또한 지원 자격 요건은 낮으면서 무턱대고 고수익 보장을 약속한다거나, 업무 관련 정보는 적으면서 무조건 연락을 달라고 요구하는 식의 반복적인 구인광고는 경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금감원 분쟁조정국 은행중소서민금융팀 관계자는 “공인인증서와 보안카드를 통해서 사실상 본인을 확인하게 되는데 이것을 남에게 건네주면 그 사람이 대출사기나 다른 목적으로 이용했을 경우에 법률적 책임을 질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상당한 주의가 필요하다”면서 “이유 없이 높은 수당과 성과급을 약속하는 회사를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기범에게 속아 대출사기 피해를 당하면 피해자들을 구제하기는 쉽지 않으므로 취업희망자들 스스로 대출사기를 당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또 취업과정에서 대출사기가 의심스러우면 즉시 경찰서(112)에 신고하거나 금융감독원 금융민원센터(1332)로 문의하면 된다.

금감원은 주요 인터넷 취업사이트에 취업사기 주의안내문을 게재토록 협조 요청하는 한편 전국 각 대학에도 취업준비생들에 대한 사전예방 교육을 강화토록 요청한다는 방침이다. 이와 더불어 대출사기 피해 민원들을 분쟁 조정하는 과정에서 피해자들을 구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박정경 기자 verit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