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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사는 기생충이 피서객들의 머릿속으로 들어가 사람들을 물속으로 유도해 익사시킨다. 2012년 여름에 개봉해 화제를 모았던 영화 ‘연가시’의 내용이다. 영화 속 기생충 연가시는 짧은 잠복 시간과 치사율 100%에 달하는 무서운 질병의 원인으로 묘사된다. 최근 이 영화 속 ‘연가시’를 연상시키는 기생충이 미국에서 나타나면서 국내에서도 감염 우려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기생충의 일종으로 일명 ‘뇌 먹는 아메바’라고 불리는 네글레리아 파울러리(Naegleria fowleri)가 그 주인공이다.

네글레리아 파울러리는 영화 속 연가시처럼 인간의 뇌를 조종하지는 않지만, 감염되면 뇌척수액까지 침투해 사망에 이르게 하고 치사율도 90% 이상 높다. 특히 이 아메바는 하천의 물놀이를 통해 주로 감염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름철 물놀이가 한창인 시즌을 맞아 불안감을 호소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감염 환자가 보고되지 않았지만, 네글레리아 파울러리가 국내에 존재할 가능성은 높다.

우선 네글레리아 파울러리는 일반적인 아메바와 다르다. 이질아메바 등은 물속에 살면서 사람이 물을 마실 때 감염돼 몸 안에서 증식하면서 병을 일으킨다. 그러나 네글레리아 파울러리는 사람 몸에 들어가지 않아도 토양과 물만 있으면 활발히 증식한다. 온도가 30도 이하일 경우 포낭상태로 지내다가, 온도가 30도 이상으로 올라가면 7∼20㎛ 크기의 영양체 상태나 편모충 형태로 증식한다. 이 상태에서 물속에 있는 사람에게 침투해 뇌척수액까지 파고들어가 뇌를 파괴한다.

네글레리아 파울러리가 처음 보고된 것은 1965년이다. 당시 호주에서 9세 어린아이 등 네 명이 뇌수막염으로 죽었는데, 부검 결과 뇌에서 기존에 발견되던 것과 다른 아메바가 발견된 것이다. 당시 발견자 파울러(M. Fowler)의 이름을 따 네글레리아 파울러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후에도 미국, 멕시코 등 전 세계적으로 발견됐고 감염자의 대부분이 사망하는 높은 치사율을 보이면서 감염경로에 대한 연구가 시작됐다. 분석 결과 사망자들은 사망 전에 저수지나 호수, 강가, 온천, 수영장 등에서 수영을 한 것이 확인됐고, 해당 물을 조사한 결과 네글레리아 파울러리가 발견됐다.

특이한 점은 대부분의 기생충이 입을 통해 감염되는 것과 달리 네글레리아 파울러리는 코를 통해 감염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에 따라 대부분 수영을 통해 감염되며 인체 간 감염도 없다. 코로 들어간 아메바는 후각신경이 뇌와 연결되는 구멍을 통해 뇌로 들어간다.

대개는 코안에서 점액에 의해 영양체의 진입이 차단돼야 하지만 일부가 점막을 뚫고 상피세포까지 도달해 이후 뇌 조직으로 침투한다. 아메바가 뇌 속에서 본격적으로 증식하면서 활동을 시작하면 환자는 심한 두통과 발열, 구토 등이 생기고, 뇌수막염의 특징인 목이 뻣뻣한 증상도 나타난다. 뇌에 염증이 생길 때 나타나는 증상은 다 발생한다. 질병은 급속도로 진행돼 일반적으로 3일에서 7일 만에 증상이 나타나고, 2주 이내 사망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이 아메바는 따뜻한 물을 좋아해서 온천이나 따뜻한 공업 폐수가 나오는 공단 및 발전소 주변 등에 흔한 것으로 보고된다. 주로 강바닥 퇴적층에서 박테리아를 먹고 산다. 하천이 많은 우리나라에도 당연히 존재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아직까지 감염보고가 없어 질병당국 차원에서 환경생태조사가 진행된 적은 없다.

그러나 네글레리아 파울러리에 오염된 물에 들어갔다고 해서 모두 다 감염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일단 코로 들어와도 코안의 점액 등 복잡한 경로를 거쳐 뇌척수액까지 도달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학계에서는 감염 확률은 대략 260만 명이 노출되면 그중 한 명이 감염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 정부 입장도 뇌 먹는 아메바에 감염되면 치명적이지만 감염률이 낮아 우려할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 기본 입장이다. 질병관리본부 감염병관리과 관계자는 “국내에는 아직 보고된 사례가 없고, 미국에서도 감염경로에 대한 근거가 확립되지 않아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서도 위험도 평가는 권고되지 않고 있다”며 “하지만 장기적으로 국립보건연구원에서 국내 서식환경 등 실태파악을 위한 조사를 준비하고는 있다”고 말했다.

네글레리아 파울러리에 감염되지 않으려면 아예 물에 가지 말아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어렵다. 소독처리가 되지 않은 수영장이나 온도가 높은 하천 등에서는 수영을 피하고, 하더라도 코에 물이 들어갈 수 있는 다이빙 등을 피하는 것이 좋겠다. 따뜻한 민물에서 물놀이할 때 바닥 침전물을 휘젓거나 파는 것도 삼가야 한다. 하지만 네글레리아 파울러리에 감염돼 사망하는 확률보다 물놀이 사고로 익사할 확률이 수십만 배 이상 높은 만큼 감염에 대한 과도한 불안감을 가질 필요는 없어 보인다.

이용권 기자 freeus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