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조선 후기 화가 신윤복이 그린 월하밀회(月下密會). 달빛 아래 남몰래 만나는 남녀의 모습을 한 여인이 야릇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신윤복은 남녀 성애를 노골적으로 표현한 춘화를 많이 남겼는데, 엄격한 유교 윤리에도 불구하고 은밀한 성행위를 즐긴 민간의 풍속을 전하고 있다. 문화일보 자료사진

정절의 역사 / 이숙인 지음 / 푸른역사

인간의 성행위는 지극히 사적인 일이다. 그럼에도 사회 풍속이 빌미가 돼 공적인 영역에서 법제 등을 통해 규제를 받는다. 문명 국가일수록 그 규제를 최소화한다. 간통죄 위헌 논란에서 보듯, 우리나라에서도 그것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이 진행 중이다.

주지하다시피, 조선시대에는 통치이념인 유교 윤리를 지키기 위해 백성의 ‘아랫도리 일’에 간섭하는 것을 당연시했다. 백성 중에서도 특히 여성의 성에 대한 통제를 법제화했다. 이른바 부녀 재가(再嫁) 금지법이 그것이다. 한번 결혼한 여성은 그 남편과 이별한 경우라도 다른 남자를 받아들여서는 안된다는 게 핵심이다. 법과 사회 통념으로 여성에게 ‘정조대’를 채운 것이다. 부녀자는 정조를 지키기 위해 은장도를 품어야 했다.

이 책은 혼인한 남녀 모두에게 요구돼야 마땅한 ‘정절(貞節)’이라는 개념이 왜 여성에게만 일방적으로 강요되었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에 재직하고 있는 저자는 ‘유교와 여성’이라는 주제에 천착한 저서를 다수 펴냈다. 이 책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여성주의 시각이 강하게 배어 있어서 보는 이에 따라선 불편할 수 있겠다. 그럼에도 문화일보 북리뷰 팀이 이 책을 선택한 것은, 그리 머지않은 과거인 조선시대의 성 담론을 집대성함으로써 그것이 현대 한국인, 특히 남성들의 성 관념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성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책은 정절의 이름으로 조선에서 행해진 의식과 실천 역사를 4가지 범주로 담아냈다. 정절과 관련한 법과 제도, 국가 차원의 장려 정책, 사회 통념 확산을 위한 교육서 편찬, 여성의 성 스캔들 사건들과 관련 논쟁 등이다.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도미 부인은 우리 역사에 기록된 최초의 정절 여성이다. 2세기 백제 여성인 도미 부인은 개루왕의 유혹을 뿌리치고 남편에 대한 사랑을 지켰다. 그런데 이야기의 앞 부분을 보면, 남편인 도미가 먼저 아내에 대해 신의를 지키는 대목이 나온다. 그는 아내와의 사랑을 지켜내기 위해 두 눈알이 뽑히는 것을 감내한다.

이 이야기는 조선 세종대에 변주된다. 유학자들이 백성을 교화하기 위한 책 ‘삼강행실도’의 ‘열녀도(烈女圖)’에 그들의 이야기를 실은 것. ‘도미의 처, 풀을 뜯어먹다’라는 제목이었다. 이처럼 도미 부인을 열녀 반열에 올린 것은 도미의 아내 사랑보다는 그 아내의 정절 행위에 주목하겠다는 뜻이다. 왕에게서 도망친 후 간난신고를 겪으면서도 남편에 대한 정절을 고수한 도미 부인의 용기가 국가의 공적 교육서를 통해 칭송됐고, 이후 조선 여성들의 롤 모델이 됐다.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열녀는 두 남편을 얻지 않는다’는 등 중국의 각종 담론이 조선 여성의 정절을 강제하는 개념의 원천이었다. 저자에 따르면, 조선 초기에는 남편 사후 수절하는 것만으로도 ‘정절녀’의 칭호를 얻었다. 후기로 가면 남편을 따라 죽은 여성을 특별히 칭송함으로써 더 강하고 혹독한 형태를 요구했다. 조선말 문신인 이유원(李裕元·1814∼1888)이 조선의 정절 개념이 중국에 비해 더 가혹하다고 말했을 정도다.

조선의 법률인 ‘경국대전’은 남편의 신분에 따른 지위와 특혜를 재가한 여자에게는 주지 않는 것을 규정하고 있었다. 성종 때 이 규제를 더 심화시켜 부녀 재가 그 자체를 금지하는 법을 제정하려는 움직임이 일었다. 이에 대해 학자·관료 46명이 참여해 격렬하게 찬반 논란을 벌였으나, 성종이 금지법을 제정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연산군 때 이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어 역시 관료· 학자들이 대규모 논쟁을 벌였다. 조선시대 내내 재가금지법이 확고부동했던 것처럼 여겨지지만, 내부에서는 이런 논쟁이 치열하게 벌어졌던 것이다(이 책이 소개하는 조선의 어전(御前) 논쟁을 보면, 대한민국의 현재 국무회의보다 훨씬 활발한 토론이 오갔음을 알 수 있다).

영화로 소개돼 잘 알려져 있는 어우동(박어을우동·朴於乙宇同)은 조선의 정절 역사에서 가장 튀는 여성이다. 사대부 가문 출신의 어우동은 귀천을 가리지 않고 수많은 남성과 통정했다는 이유로 사형을 당한다. 그게 성종 때의 일이다. 그보다 50년 전인 세종 때에 역시 검한성(檢漢城·지금의 서울시장)을 지낸 유구수(兪龜壽)의 딸인 유감동(兪甘同)이 사대부 남성 40여 명과 간통한 죄로 유배를 당했다. 음부(淫婦)로 규정된 두 여인에 대한 처벌이 ‘유배’와 ‘사형’으로 다른 것과 관련, 세종 때보다 성종 때 유교 윤리가 더 심화됐기 때문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여성의 성 스캔들을 대하는 두 임금의 성정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있다. 과연 어떤 것일지는 향후 연구가 더 진행됨에 따라 규명될 것이다.

일부 선비들은 사대부 여성의 성 스캔들이 났을 때 음부(淫婦)만 처벌 받는 것은 형평에 어긋나니 이와 관계한 간부(姦夫)들도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현대인의 시각에서 보면, 그런 균형 감각을 지닌 이들이 있었다는 게 반갑다.

흥미로운 것은, 조선에서 성 스캔들은 소문에 의해 확장됐고, 그런 논란을 부추긴 것은 남성 지식인들이었다는 것. 16세기 중반 진주에서 일어난 함안 이씨 사건이 대표적이다. 사대부 가문의 과부인 이 씨의 음행(淫行)과 관련한 소문이 퍼지는 과정에서 당대 절의지사(節義之士)로 유명했던 남명 조식(曺植)의 이름이 거론됐다. 이 사건으로 옥에 갇혔다가 풀려난 사람들이 소문의 근원지를 남명으로 보고, 남명 학파에 복수를 하고자 했다. 남명은 이에 억울함을 호소했으나, 학파가 다른 퇴계 이황(李滉)은 ‘그 높은 절개를 스스로 깎아내리며 시비를 다투기를 그칠 줄 모르는 자, 이해할 수 없는 조군(曺君)’으로 깎아내렸다. 남성 중심의 조선 사회에서 여성의 성 관련 소문을 둘러싸고 치열한 패권 다툼이 벌어졌음을 단적으로 시사하는 보기다.

근대화를 이뤘다고 하는 대한민국에서 성 소문이 확장되는 방식은 과연 조선시대와 달라졌을까. 이른바 성 동영상 유출 사건 때 여성만이 피해자가 된 상황을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장재선 기자 jeije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