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유병언(73) 전 세모그룹 회장의 사인을 분석 중인 가운데 전문가들은 부패된 시신에서 알 수 있는 정보가 많지 않다며 시신에 대한 독극물 검사가 최우선적으로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박의우(법의학과) 건국대 교수는 “시신의 부패가 80% 이상 진행됐다면 국과수에서도 밝혀낼 수 있는 게 많지 않을 것”이라며 “독극물 검사가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최우선 작업”이라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일반적인 사망 사고와 달리 시신이 외부로부터 옮겨왔을 가능성도 있다”며 “독극물이 검출되지 않는다면 타살과 자연사를 구분할 만한 속시원한 대답을 내놓기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곽대경(경찰행정학) 동국대 교수 역시 “외상이 발견되지 않았다면 독극물 검출 여부가 가장 중요하다”면서 “조직에 독극물이 남아 있다면 타살에 초점을 맞춰 수사가 급물살을 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유 전 회장이 지병으로 평소 많은 약을 복용했다면 누군가 이 점을 노리고 독극물을 먹도록 해 사망에 이르게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곽 교수는 “독극물 조사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가능한 모든 약물을 대조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화기관에 음식물이 남아있는지 여부도 자연사와 타살을 가르는 중요 변수다. 곽 교수는 “소화기관에 음식물이 남아 있다면 사망 시간을 추정할 수 있다”며 “반대로 남아있는 음식물이 없다면 ‘아사’의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로서는 목 졸림 자국이나 흉기사용 흔적이 발견되지 않아 타살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를 아예 배제하기 힘들다는 의견도 나왔다.

박 교수는 “교살을 당했더라도 시신이 부패해 목 졸림 흔적은 물론 폐 등 장기기관 손상 여부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곽 교수도 “유 전 회장 시신의 목과 몸이 분리됐다는 정황으로 교살 추론도 가능하다”면서 “당시 비가 내린 현장에서 저체온증으로 자연사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부패된 시신에서 이 같은 점을 규명해 내긴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근평 기자 istandby4u@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