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고심 박근혜 대통령이 14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면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VIP(박근혜 대통령)가 정말로 싫어하는 일이 벌어졌다. (박 대통령의 장관 인사에)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다.”

여권의 한 고위 관계자는 14일 오전 문화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정성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 정회 후 폭탄주 회식 논란’과 관련, “왜들 자꾸 사고를 치는지 모르겠다”고 답답함을 토로하며 이같이 말했다. 이 관계자의 발언은 박 대통령 및 청와대와 여권 수뇌부가 정 후보자 관련 논란을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짐작하게 한다.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정 후보자의 폭탄주 관련 보고를 받은 뒤 표정이 굳어졌다고 한다”고 말했다.

다른 여권 관계자들도 지난주까지 김명수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 한 명의 낙마 가능성에 무게가 실렸던 청와대 기류가 주말을 거치면서 ‘김·정 후보자 모두 불가(不可)’ 쪽으로 굳어졌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청와대와 새누리당 내에서 김 후보자뿐 아니라 정 후보자의 낙마도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이번 청문회 과정에서 보여준 정 후보자의 모습이 그동안 박 대통령이 강조했던 고위 공직자의 도덕성과 갖춰야 할 자세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윤진숙 전 해양수산부 장관과 김장수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이 경질된 이유는 모두 국민들에게 상처를 준 부적절한 언행 때문이었다”며 “정 후보자의 국회 위증도 문제가 됐지만, 폭탄주 회식 논란은 청문회에서 제기된 다른 논란들보다 더 심각한 결격사유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박 대통령은 지난 6월 23일 김관진 국가안보실장과 신임 청와대 수석비서관들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나라에 대한 책임감, 사명감, 애국심으로 일하면 덜 힘들고 보람도 클 것”이라며 고위 공직자의 자세를 강조했었다. 4월 29일 국무회의에선 세월호 침몰 참사 이후 공직자들의 부적절한 언행과 처신을 질타하면서 “공직은 높고 낮음을 떠나 막중한 책임과 소명, 도덕성이 따르는 자리이기 때문에 공직자의 작은 언행도 큰 여파를 미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 1월에도 “공직자들의 적절치 못한 발언으로 국민 마음에 상처를 주고 불신을 키우고 있어 유감”이라며 “이런 일이 재발할 경우에는 그 책임을 반드시 물을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정 후보자 임명 강행에 대한 좋지 않은 여론, 그리고 강행할 경우 대야관계가 다시 얼어붙어 결과적으로 7·30 재·보궐선거에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는 점도 박 대통령의 ‘결단’을 추동하는 요인으로 분석된다. 여권에서는 “박 대통령이 정 후보자 임명을 포기한다면 재·보선 상당수 지역에서 여당에 유리한 구도가 형성될 것”이라는 노골적인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여당 내 정 후보자를 감싸지 않는 기류가 확산되고 있는 것은 이런 흐름과 무관치 않다.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전날에 이어 이날도 “장관 후보자 인사 문제는 대통령의 결정에 맡겨야 한다”며 중립적인 입장을 밝혔다. 전날 “장관 후보자들과 임명권자의 책임 있는 결단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던 이준석 ‘새누리당을 바꾸는 혁신위원회’ 위원장도 “임명권자의 눈치만 보고 있을 것이라면 인사청문회는 할 필요가 없다”며 당 지도부를 압박했다.

오남석·현일훈 기자

greente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