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의 월드컵 악몽이 깊어지고 있다.

9일(한국시간) 독일과의 준결승전에서 1-7로 참패하면서 사상 최악의 결과를 받아든 데 이어 10일엔 ‘숙적’ 아르헨티나가 네덜란드를 승부차기 끝에 꺾고 결승에 진출하는 모습을 속절없이 지켜봐야 했다. 남미 대륙에서 앙숙으로 통하는 아르헨티나의 결승행은 브라질인들에게 큰 심리적 고통이었다. 이에 대해 미국 ‘타임’지 인터넷판은 “아르헨티나가 브라질인들의 월드컵을 완벽히 망쳐 놨다”고 평했다.

아르헨티나가 네덜란드를 꺾는 순간 상파울루 코린치앙스 경기장 인근에서는 두 발의 총성이 울렸다. 상파울루와 리우데자네이루 등 경기장 부근 거리의 치안 상태는 훨씬 더 험악해졌다.

아르헨티나의 스포츠지 ‘올레’의 취재기자가 강도가 탑승한 도난 차량과 충돌해 사망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브라질의 일간지 ‘랑스’는 아예 브라질의 참패에 따른 감정을 독자들에게 맡긴다며 1면을 백지 발행했다.

반면 아르헨티나는 잔칫집 분위기다. 노란색 일색이던 경기장에는 파란색 유니폼이 물결치고 있다. 거리도 마찬가지다. 리우데자네이루에 있는 세계적 휴양지인 코파카바나 해변에는 노란색이 자취를 감췄다. 파란색 아르헨티나 팬 일색이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아르헨티나 팬들은 브라질 곳곳에서 ‘브라질, 기분이 어때’라는 노래를 불러댔다. 이 노래 가사 중에는 1990 이탈리아월드컵 16강전에서 클라우디오 카니자가 브라질을 상대로 결승골을 넣었던 내용도 들어 있다.

이쯤 되자 브라질 팬들은 결승전에서 아예 독일을 응원할 판이다. 13일 열리는 네덜란드와의 3, 4위전에서는 꼭 이겨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루이스 펠리피 스콜라리(사진) 감독에게도 사퇴 여론이 불거졌다. 그러나 스콜라리 감독은 “3, 4위전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사퇴 거론은 난센스”라며 “마지막 경기가 끝난 후 월드컵 결과 보고서를 브라질축구협회에 제출할 것이고 최종 결정은 그들이 하게 될 것이다. 그 전까지는 내 임무에 충실하겠다”고 말했다.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