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에 체류 중인 것으로 알려진 원로 화가 천경자(90) 씨 측이 최근 대한민국예술원에 회원 사퇴서를 제출한 것이 확인됐다. 대한민국예술원 관계자는 11일 문화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지난 2월부터 (천 화백 측에) 회원 대상의 월 수당을 잠정적으로 지급 중지했다”며 “3월쯤 천 화백을 대리해온 큰딸 이혜선(69) 씨가 예술원에 회원 탈퇴를 요청해 왔다”고 밝혔다.

천 화백은 지난 1998년 작품 98점을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한 뒤 미국 뉴욕으로 떠났고, 2003년 뇌출혈로 쓰러진 뒤 거동을 못하고 의식만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2006년 갤러리현대 전시 등 국내서 미완성 작품과 드로잉 위주의 개인전이 큰딸 이 씨를 중심으로 열렸지만, 지난 10년여간 천 화백을 만났다는 사람이 없어 생존 여부에 대한 의문이 제기돼왔다. 화단에서는 천 화백의 행방을 두고 “뉴욕 나들이길에 천 화백을 만나기 위해 수소문했던 작고화가 K 씨도 결국 만나지 못한 채 돌아왔다더라” “천 화백은 의식이 없다더라” “이미 돌아가신 게 아닌가” 등의 뒷말이 무성했다.

생존을 둘러싼 천 화백의 미스터리가 외부로 드러난 것은 예술원의 수당 지급 중단 및 대한민국예술원 60주년 기념전이 계기가 됐다. 회원 대상으로 매월 180만 원의 수당을 온라인 송금해온 예술원 측은 “천 화백이 고령인데다 생존 여부에 대한 설왕설래가 있고 천 화백의 근황을 확인하기 어려워 지난해 딸에게 천 화백의 병원 기록 등 생존 여부에 대한 입증 자료를 요청했으나 응답이 없었다”며 “지난 2월부터 송금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예술원 측은 뉴욕 한국총영사관에도 외교문서로 천 화백 생존 여부를 확인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영사관 관계자도 직접 확인은 못한 채 딸 이 씨로부터 “살아계시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것으로 알려졌다.

예술원 관계자는 “3월쯤 딸로부터 예술원 60주년 기념전에 작품을 걸지 말라”며 회원을 탈퇴하겠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지난 봄 예술원 60주년 기념전 준비과정에서 딸 이 씨가 “1991년 어머니의 가짜 그림을 진짜로 판정한 국립현대미술관의 덕수궁관에서 열리는 전시에 출품하지 않겠다. 살아계신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니 어머니에 대한 명예훼손”이라며 “예술원 회원을 탈퇴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 최근에도 이 씨는 한 예술원 회원에게 전화해 “회원 탈퇴를 하겠다는데 왜 안 해 주느냐”며 항의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회원 본인의 요청이 아니며, 회원 입회·탈퇴가 회원 총회의 의결사항이라 천 화백은 아직 예술원 회원직을 유지하고 있다. 예술원 60주년 기념전에도 예술원 소장품 2점이 전시 중이다.

1924년 전남 고흥에서 태어난 천 화백은 일본 도쿄여자미술전문학교를 졸업했고 1952년 뱀 그림 ‘생태’를 발표, 화제를 모았다. 전통 동양화의 기법을 벗어나 문학적, 설화적으로 여인의 한과 꿈·고독을 환상적인 원색으로 펼치며 독특한 미술 세계를 구축했다.

신세미 기자 ssem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