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팀 하포드는 거시경제학의 관점에서 불황과 경기부양책의 실효성을 살핀다. 사진은 지난 2009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판하는 시위대 모습. 연합뉴스

당신이 경제학자라면 / 팀 하포드 지음, 김명철·이제용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영국의 경제신문 파이낸셜타임스의 수석 칼럼니스트인 팀 하포드. 그는 복잡한 경제문제를 어지러운 그래프나 도표 한 장 없이 다양한 예화와 능숙한 비유만으로 흥미롭게 풀어낸 세계적인 밀리언셀러 ‘경제학 콘서트’의 저자다. 이른바 ‘단순화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면서, 복잡하기 그지없는 경제 사안의 핵심을 일상의 재미있는 사례로 적절하게 설명해낸다는 건 그가 가진 가장 탁월한 능력이다.

이 책에서도 하포드의 이런 재능이 유감없이 발휘된다. 다양하고 개별적이면서 흥미로운 사례를 자기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로 엮어 해석해내고, 이를 또 체계적인 지식의 형태로 만들어내는 이야기꾼으로서의 솜씨는 감탄스러울 정도다.

이 책이 저자가 앞서 써냈던 몇 권의 베스트셀러나 이즈음 유행처럼 출간되고 있는 미시경제학 또는 행동경제학의 책들과 명확하게 차별되는 건 보다 큰 틀의 ‘거시경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복잡하고 딱딱한 거시경제의 개념과 이론을 예화와 비유를 재료 삼아 능숙한 주방장처럼 말랑말랑하게 요리해낸다.

예화와 비유뿐만 아니라 서술의 형식도 경쾌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일문일답의 구어체 문답이다. 답은 당연히 저자가 하는 것이고, 질문하는 이는 가상의 독자다. 상식 수준의 경제지식을 갖춘 독자가 어느날 ‘경제를 운용하는 사람’의 자리에 앉게 됐다는 것이 전제다. ‘경제가 고장나 있는데, 과연 어떻게 고쳐야 할 것인가.’ 그것이 가상의 독자에게 주어진 임무다. 저자는 거시경제학의 초보적인 개념에 대한 이해부터 불황에 대한 처방과 실전적인 경기부양 정책의 실효성까지 두루 짚는다.

경제불황의 다양한 형태를 설명하며 저자가 꺼내놓은 몇 가지 예화를 보자. 미국 워싱턴의 한 탁아협동조합. 조합은 탁아비용으로 지불할 수도 있고, 남의 아이를 돌보며 벌 수도 있는 ‘증서’ 제도를 도입했다. 수요와 공급을 고려해 발행한 증서는 적절하게 유통되리라 믿었지만, 조합원들은 뜻밖에 증서를 쓰지 않고 모으는 데만 혈안이 됐다. 여러 장의 증서를 미리 얻어둬야 한다는 생각에 아무도 아이를 맡기지 않았고, 다른 집의 아이를 돌봐주겠다는 이들만 늘었다. 저자는 아무도 증서를 지출하려 하지 않는 이런 상황을 일러 ‘탁아불황’이라고 불렀다. 이 사례를 통해 저자는 케인즈 학파가 불황을 보는 관점과 태도, 그리고 극복방안을 설명한다.

저자가 다른 종류의 사례로 든 불황은 2차 대전 중 독일 포로수용소 내의 구호품 거래시장에서 벌어진 것이었다. 전쟁의 막바지에 구호품이 줄어들자 담배나 비누 등 생필품의 가격이 뛰고 거래가 뚝 끊겼다. 전적으로 ‘공급의 부족’에서 발생한 불황이었다.

이는 경제는 잘 돌아가는 기계와 같으며 불황은 전쟁이나 석유파동 같은 외생적 충격 때문에 발생한다는, 이른바 고전학파가 불황을 바라보는 태도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 두 종류의 불황은 과연 어떻게 극복됐을까. 저자는 이 두 가지 사례를 통해 여전히 경제학자들이 벌이고 있는 경기 부양이냐, 긴축이냐 하는 논쟁을 이해하는 단서를 제공해주고 있다.

이런 방식으로 저자는 불황의 도래를 어떠한 징후로 알아내는지, 행복을 위해 재분배를 확대해야 할 것인지, 성장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지, 상대적 빈곤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지 등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지출승수, 가격경직성, 베버리지곡선 등의 경제학의 개념들을 끼워 넣는다. 재미 읽게 읽힌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거시경제학이 다루는 경제적 현상과 이론적 관점을 두루 살펴볼 수 있는 개념서의 역할을 훌륭하게 해낸다.

박경일 기자 parki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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