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이 6자회담 재개를 위해서는 북한이 먼저 ‘비핵화’ 의지를 보여야 한다는 입장을 공식화한 가운데 버락 오바마 행정부와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을 담당했던 고위 관료들이 대북제재 유용성 논쟁을 벌여 주목된다.

오바마 행정부의 톰 도닐런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대북제재의 영향이 제한적이라는 입장을 보인 반면, 부시 행정부 때의 스티븐 헤들리 전 국가안보보좌관은 방코델타아시아(BDA)식 대북 금융제재가 북한을 압박하는 데 효과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2일 도닐런 전 보좌관은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주최로 워싱턴 DC에서 열린 ‘재무부 테러리즘·금융정보실(TFI)의 외교적 역할’ 토론회에서 “북한과 같은 나라에서는 제재가 매우 제한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면서 “국제 경제와 단절(Unplugged)된 북한을 상대로 하는 제재는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도닐런 전 보좌관은 2010년 10월부터 2013년 6월까지 3년 가까이 오바마 행정부 1, 2기에 걸쳐 ‘외교 실세’ 역할을 했던 대표적 인사다.

이날 도닐런 전 보좌관은 북한과 이란은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을 갖고 있지만 제재의 효과는 다르다는 견해를 나타냈다. 그는 그 이유로 “북한은 달러에 기반을 둔 경제체제가 아니고 이란처럼 국제경제에 편입된 구조도 아니다”는 점을 적시했다. 도닐런 전 보좌관은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성공적으로 (북한에) 제재를 가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부분적이었다”고 평가했다.

이에 대해 부시 행정부 시절 대북 금융제재를 밀고 나갔던 헤들리 전 보좌관은 “부시 행정부는 9·11 테러 이후 행정명령 13224호를 발동해 테러와 관련된 금융기관과 기업들을 겨냥한 제재 활동을 벌여왔다”면서 “첫 번째 대상은 북한을 겨냥한 2005년 BDA 제재였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BDA 제재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개인자금을 장악할 수 있었고, 북한을 국제금융시스템에서 차단하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헤들리 전 보좌관은 대북 금융제재가 북한에 상당한 압박 요인으로 작용했고, 결과적으로 북한을 비핵화협상으로 나오게 하는 역할을 했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한편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오바마 행정부가 1기 때 북한에 대해 전략적 인내정책을 편다는 명분하에 북한의 핵개발을 사실상 방기해왔다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이에 따라 오바마 2기 행정부에서는 보다 명확하고 구체적인 가이드라인 하에 북핵문제를 다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워싱턴=이제교 특파원 jkle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