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피로사회’의 철학자 한병철은 시대마다 고유한 질병이 있다고 했는데 ‘번아웃(Burnout)’, 소진증후군은 우리 시대 질병 중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번아웃, 말 그대로 에너지가 다 타버려 탈진해버린 것입니다. 북리뷰 인터뷰로 만난 윤대현 서울대병원 교수는 경쟁과 성취 사회에서 많은 사람이 이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습니다. 얼마 전 김대식 서울대 교수와 김두식 경북대 교수 형제는 ‘공부 논쟁’(창비)을 통해 우리 아이들의 번아웃에 대해 걱정했습니다. 너무 어린 나이에 공부에 시달리다 대학에 들어갈 즈음, 일찌감치 번아웃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에너지를 ‘번아웃’시키며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이러니하게도 행복입니다.

매주 행복 관련 책들이 끊이지 않고 출간됩니다. 주로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는지에 대한 방법론입니다. 책이 많이 나온다는 것은 그만큼 행복하지 않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이 같은 비슷비슷한 책들 사이에서 서은국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의 ‘행복의 기원’(21세기 북스)이 눈에 띕니다.

책은 행복에 대한 통념을 다시 바라보게 합니다. 흔히 행복해지려면 생각을 바꾸라고 하지만 행복은 이성 능력이 아니라 본능적·동물적인 면에 더 가깝다고 합니다. 또 행복을 돈, 학력, 직업, 성별, 나이 같은 외적 조건들의 합으로 생각하지만 연구결과를 보면 행복의 개인차에 외적 조건의 역할은 10∼15% 정도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오히려 돈과 물질적 태도 자체가 행복에 방해가 된다고도 조언합니다. 이 이유가 매우 흥미롭습니다. 인류역사에서 호모사피엔스가 다른 사람을 중요하게 여긴 것은 생존을 위해 타인의 보호와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타인은 나의 불충분함을 채워주는 절대적 존재였지요. 그런데 3000년 전 돈이 등장하면서 인간의 나약함을 보완해줄 새로운 수단이 생긴 것이죠. 예전엔 먹을 것이 떨어지면 사냥 잘하는 친구가 필요했지만 지금은 돈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거창한 행복에 대한 바람도 잘못이라고 합니다. 사람이 감정에 지속적 반응을 보일 수 있는 시간은 3개월. 아무리 감격스러운 일도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진다는 것이죠. 그러니 거창한 기쁨보다 작은 즐거움을 여러 번 갖는 것이 더 행복합니다.

이 행복전문가는 결론적으로 인간의 가장 행복한 모습은 ‘좋아하는 사람과 음식을 먹는 장면’이라고 소개합니다. 인간의 원시적 뇌가 가장 흥분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음식과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행복과 불행은 이런 장면의 인생이냐 아니냐로 갈립니다. 저자는 덧붙입니다. ‘The rest are details’. 나머지 것들은 주석일 뿐이다.

작은 기쁨에 행복해하시길.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