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다움의 가장 중요한 기준을 생각으로 말한다. 그래서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라고 한다. 그러면 ‘생각한다’는 게 무엇일까? 다시 생각해보자.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책에서 ‘인간은 평등하다’는 것을 배웠다. 그러면 인간이 평등하다는 근거가 무언가? 평등하다고 하면서도 실제 사는 것은 평등하지 않는데 왜 그런 것일까? 인간은 평등하게 살고자 지금까지 어떤 실천을 했을까? 그런데 그것들은 왜 실패했을까? 그러면 달리 대안이 없는 것일까? 인간의 사회 역사는 여기서 끝일까? 등으로 생각이 이어질 수 있다. 이게 의식의 회로, 달리 말하면 학습회로다. 이 회로가 살아있을 때, ‘생각한다’는 것이 제 기능을 한다.

그러나 요즘 시절은 생각이 없다. 가령 학생들이 ‘인간은 평등하다’고 책에서 보았으면 그걸로 끝이다, 평등의 근거가 뭔지도 따질 것 없고, 왜 불평등하게 사는지 그거야 내 알 바가 아니고 ‘평등하다’는 게 정답이니까, 그것만 외우면 된다는 거다. 그러니까 보는 걸로 끝이다. ‘생각하기’로 이어지질 않는다, 말하자면 <보기>-<생각하기>의 회로가 끊어져 있다.

그뿐 아니다. 남들의 생각을 들을 수 있는 <듣기>와도 회로가 끊어져 있다. 남들의 생각이 자기가 본 것과는 다르다면 그게 왜 다른지, 시비판단을 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안 된다. 그냥 자기가 본 것이 ‘옳다’는 거고 자기 생각이 ‘옳다’는 거다. 그런데 자기 생각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은 자기 생각도 아니다. 자기가 어디선가 본 것, 책에서 보거나 다른 매체를 통해서 본 것, 그것을 자기 생각으로 우기는 것일 뿐이다. ‘자기 생각’도 없이 ‘자기 생각’으로 우기는 것이다.

학생들만 그런 게 아니다. 대중들도 그렇다. TV에서 보고 신문에서 보면 그게 사실이다. 그게 맞다는 거로 받아들인다. 이 신문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저 신문에서는 저렇게 이야기하는데 왜 달리 말하는 것일까? 그러면 과연 사실이 무얼까? 라는 의문도 없다. 거기에 합리적 판단이란 것은 자리할 여지가 없다. 그냥 미디어의 연출에 따라 춤추는 팔로워(follower)일 뿐이다.

우리가 소통을 말하지만, 남과의 소통은 차치하고 우리 내면의 의식의 회로, 생각의 회로가 끊어지거나 버그(bug)가 나있거나 그런 상태다. 그런 바에야 타인과의 소통, 이건 불가능하다.

미디어라는 것과 SNS라는 것이 소통을 도와주는 것일까? 사실은 소통을 도와주는 척하면서 회로가 끊어지고 버그가 난 인간들, 생각이 없는 인간을 지배하는 도구로 둔갑하고 있다. 무슨 ‘소설’을 쓰더라도 추종하는 인간이 있고 그런 인간을 조종해서 여론을 만들 수 있으니까.

미디어의 오염, SNS의 오염, 그 극한까지 갈 것이다. 그 오염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도 ‘의식의 회로’, ‘학습회로’를 복원해야 한다. 아마도 21세기 인간 교육의 최대의 과제도 바로 이 문제일 것이다. ‘학습’이전에 ‘학습회로의 복원’, 이게 선결과제일 것이다.

배영순(영남대 명예교수 baeysoon@yumail.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