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일본 문부과학성 산하 연구기관 이화학연구소는 올해 초 발표된 신형 줄기세포 ‘스탭(STAP·Stimulus-Triggered Acquisition of Pluripotency·자극 야기 다능성 획득) 세포’ 논문이 조작됐다고 최종 결론을 내렸다. 연구소 측은 논문 작성을 주도한 여성 과학자 오보카타 하루코(小保方晴子·30) 연구주임이 “악의(고의)적으로 논문 속 세포 사진을 조작·날조했다”고 규정하면서 징계 절차를 밟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로써 일본 과학계의 신데렐라가 이뤄낸 ‘세기의 발견’은 미숙한 연구원이 악의적으로 저지른 사기극쯤으로 마무리되는 분위기다.

그러나 조작 논란이 불거진 지 불과 석 달 만에 이화학연구소가 내놓은 ‘결론’은 오보카타 본인은 물론 이화학연구소 안팎의 과학자들조차 납득시키지 못하고 있다. 논문에 참여한 베테랑 과학자들과 연구소 조직의 책임은 없었는가, 논문 발표 당시 젊은 여성 연구원을 기자회견 무대에 세우고 대대적인 홍보 효과를 거뒀던 연구소의 ‘악의’는 없었는가, 일본 유일의 자연과학종합연구소로 물리·화학 분야에서 세 차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던, 명성있는 이화학연구소가 어째서 신입 연구원의 논문을 제대로 검증하지 못했는가 등등 의문투성이다. 여기에 거대 조직인 이화학연구소가 연구원 한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는 듯한 행태까지 의혹을 낳고 있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 12일부터 14일까지 3회에 걸쳐 이번 논문조작 사태의 원인과 내막을 추적 보도했다. 니혼게이자이는 “스탭 세포 논문은 이화학연구소를 둘러싼 환경이 만들어낸 구도 속에서 태어났다”며 “거기에 악의가 있었다면 논문에 이름을 올린 사람뿐 아니라, 명문 기초과학연구소를 돈과 이권의 무대로 만든 모든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연구소·정부에 불똥 튈라… 오보카타 ‘밀어내기’ = “아무리 노력을 해도 (무조건) 안 된다고 말하는 식의 결정 아니냐.” 오보카타의 변호사 미키 히데오(三木秀夫)는 이화학연구소가 ‘악의적 조작’이라고 결론짓고 재조사 요구를 거절한 데 대해 이 같은 반응을 보였다. 이화학연구소가 논문 조작 파문을 계기로 외부 전문가들을 모아 구성한 개혁위원회의 기시 데루오(岸輝雄) 위원장조차 “(결론이) 너무 빠른 것 아니냐”며 “딱 잘라서 여기는 착하고 저기는 나쁘다라는 식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연구소 측이 성급하게 오보카타를 ‘죄인’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얘기다.

이화학연구소는 또 논문 조작 조사에 돌입한 이후, 오보카타의 실험실 직원들을 모두 다른 부서로 이동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소가 조직 차원에서 ‘오보카타 배제’를 추진하고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학계 안팎에서는 이화학연구소가 오보카타를 자르는 선에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조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책임의 범위가 확대되면 이화학연구소 조직과 고위관계자는 물론, 연구소에 자금을 지원하고 있는 정부까지도 도마에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화학연구소는 1990년대 중반 통과된 ‘과학기술기본법’을 통해 조성되는 정부 자금을 지원받고 있다. 2013년 기준 이화학연구소의 연간 예산은 844억4300만 엔(약 8600억 원)에 달한다.

◆돈 경쟁과 성과주의 = 이화학연구소 내부에서는 정부 예산을 따내기 위한 프로젝트 그룹 간 경쟁이 치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제산업성 과학기술담당 부서 출신인 후쿠시마 노부유키(福島伸享) 전 중의원 의원은 “이화학연구소 연구원이 예산을 목적으로 찾아와 경쟁 연구원의 비리와 여성 편력까지 폭로했었다”면서 “정치권보다 더 더러운 세상이 아닌가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로비, 음해까지 해가며 자금을 따낸 이후에는 더 큰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돈을 받은 만큼 연구 성과를 올려야 한다는 압박이다. 속도와 결과를 신경쓰다 보면 치밀하게 자료를 검증하는 과정은 생략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정부 예산을 활용해 고용한 외부 기술자에게 데이터 관리를 맡겨 시간을 절약하고, 부하 연구원의 논문에 이름을 올리는 식으로 실적을 부풀리게 된다. 이화학연구소에서 일했던 전직 연구원은 “돈은 충분히 있으니 실험이나 데이터 작성은 부하 직원이나 외부 업자에게 통째로 맡긴다”면서 “그런 식으로 논문이라는 실적을 가로채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보카타는 비정규직… 재고용 위해 조작 무리수 뒀나 = 이화학연구소는 전체 2800여 명의 연구원 가운데 절대 다수인 88%를 임기제로 채용하고 있다. 오보카타 역시 이들 중 하나였다. 오보카타는 5년 임기로 1년마다 재계약을 해왔다고 한다. 임기제 연구원들은 대부분 3∼5년의 임기로 고용되며 한 차례 임기를 갱신해 채용 기간을 연장할 수 있지만, 대부분이 연장에 실패하고 연구소를 떠난다. ‘임기제 연구원’이라는 말로 포장돼 있지만 고용상태가 불안한 고학력 비정규직 근로자인 셈이다.

‘세기의 발견’급 성과라도 내지 않으면 연구소에 남아있을 수 없는 구조다. 한 연구원은 “오보카타가 등장했을 때 이 연구로 임기제 고용 체제가 수정될 것이라고 기대했다”며 “노벨상을 탈지도 모르는 사람을 자를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러나 기초과학 분야 논문을 완성하려면 밤낮 없이 연구를 해도 몇 년씩 걸리는 경우가 많다. 기대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임기 안에 논문을 발표할 수조차 없는 상황이다. 정신적인 부담에 짓눌린 연구원들이 조작의 유혹에 노출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오보카타의 논문이 실린 ‘네이처’처럼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잡지를 통해 논문을 발표하는 일은 단번에 실적을 쌓는 지름길이 된다. 양대 과학잡지로 불리는 ‘네이처’와 ‘사이언스’는 연구의 영향력을 평가하는 점수 격인 ‘임팩트 팩터’에서 일반 논문의 30배가 넘는 가치를 갖고 있다고 한다. 이화학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네이처와 사이언스에서 날조나 조작이 아닐까 의심스러운 논문이 보이는 경우가 있다”면서 “(연구 부정) 리스크를 감수할 가치가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하나 기자 han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