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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부동산 심리 / 박원갑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

“망각은 때로는 축복이다. 인간은 망각이 있기에 과거의 슬픔에서 벗어나 다시 평온과 행복을 찾을 수 있다. 망각은 아픈 상처를 치유하는 심리적 면역기제다.”

스스로 ‘하우스 푸어’(house poor·집을 보유했지만 무리한 대출로 인해 빈곤하게 사는 사람들)라고 생각한다면, 책의 끝부분(306쪽)부터 읽어보기를 권한다.

일단, 잊고 다시 시작하자. ‘재테크 마법’에 걸려들어 깊은 상처를 입었다면, 부동산과 심리를 결합·분석한 이 흥미진진한 책 한 장조차 넘기기 힘들 테니.

신도시 분양 열풍에 중대형 아파트를 무리하게 구입했다. 매입 이후 값이 잠시 꿈틀했으나 줄곧 내리막. 고점에서 40% 가까이 떨어졌다. 그러나 이것은 ‘내 잘못’이 아니다. ‘부동산 광풍’이라는 2000년대의 특수한 상황, ‘시대의 홍역’일 뿐. 지은이는 “왜 그런 어처구니없는 짓을 했지?”라는 자책 대신 “우리 모두의 탓이오”라는 마음 자세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일종의 ‘부동산 힐링서’라고 볼 수 있겠다.

망각의 강 ‘레테’(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사후 세계의 강)를 건널 준비가 되었는가. 그렇다면 이제 부동산 시장의 축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생각들을 해부해 보자.

“아파트를 분양받는다는 것은 중산층 신분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행운의 열차 티켓을 장만하는 일이었다. 이는 아파트값 상승 행진이 계속되었기에 가능했다. (중략) 아파트는 사두면 적어도 가격이 떨어지진 않는 마을 뒷산의 큰 바위 같은 듬직한 존재였다. 아파트에 대한 믿음은 시간이 지나 맹신으로 바뀌었다. 이른바 아파트 불패신화다.”(19쪽)

“부동산은 음식으로 치면 삼계탕보다는 보신탕에 가깝다. 삼계탕은 드러내 놓고 먹지만 보신탕은 몰래 먹는다. 소유 욕망이 극대화된 부동산은 아직까지도 음습한 밀실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35쪽)

저자는 단기적인 투자 지침이나 미래 예측보다 부동산 시장에 깔린 복잡다단한 인간의 심리를 다각도로 보여줌으로써, 보다 장기적인 안목을 갖추도록 돕는다. 왜 우리 사회는 아파트 가격의 노예가 되었는지, 왜 대도시 사람들은 “집을 언제 살까요”라는 질문을 수시로 하는지, 왜 남자는 전원주택을 선호하고 여자는 아파트를 좋아하는지, 왜 사람들은 이익을 얻는 것보다 손해 보는 것에 더 민감한지, 왜 전문가들의 시장 전망은 다 비슷한지 등등. 이는 그동안 부동산을 투자재로만 바라봐온 한국인들에게 새로운 터닝포인트를 제공한다.

저자는 궁극적으로 욕망의 눈높이를 낮추고, ‘부자 따라하기’ 오류를 범하지 말고, 부동산 접근법을 바꾸라고 제안한다. 다시 말해 ‘행복 재테크’다.

“이제라도 집을 제자리로 돌려놓아야 한다. 집에 대해서는 하우스보다 ‘홈’의 비중을 높여야 우리가 행복해질 수 있다. (중략) 하우스 푸어는 있어도 홈 푸어(home poor)는 없는 법이다.”(310쪽)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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