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오후 여객선 진도 침몰 참사 실종자 가족들이 머물고 있는 전남 진도군 실내체육관에서 만난 A(51) 씨는 실종자 가족이 아니었다. 그의 딸은 지난 19일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돼 이미 장례까지 마친 상태였다. 그가 아직도 이곳에 머물고 있는 이유는 딸에 대한 그리움이 쉽사리 가시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안산 단원고 근처에 살고 있다. 단원고 학생들의 등교가 재개되다보니 오가는 학생들을 보면 자꾸 딸 모습이 떠올라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학생들 사이에서 딸이 금방이라도 뒤돌아보며 “아빠” 하고 부르며 나타날 것 같아 목이 메었다. 그는 결국 딸의 마지막 흔적을 찾아 지난 24일 다시 진도 팽목항으로 내려왔다.

그러나 그가 팽목항을 다시 찾은 것은 ‘딸바보 아빠’로서만은 아니었다.

A 씨는 “딸의 학교를 갔다가 교실 창문에 친구들이 딸아이에게 남긴 메모를 봤다”면서 “딸바보라고 자부하며 딸을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때야 딸이 학교 교지편집부원이란 사실을 알았다”며 울먹였다. 그는 “내 딸의 다른 소중한 친구들이 아직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다시 이곳을 찾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딸의 생사가 확인되지 않았던 사흘 동안 지금 실내체육관에 머물고 있는 다른 실종자 가족들과 똑같은 처지였다. 최근에는 실종자 수색작업이 더뎌 답답한 마음에 수색현장을 멀리서나마 보고 싶어 배를 빌려 근처 섬에 다녀왔다고 했다. 그는 실종자 가족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이것저것을 챙겨주고, 말벗이 돼주고 있다.

딸을 저세상에 보낸 아버지치고는 표정이 담담해 보인다는 생각이 들 즈음 그는 “다른 실종자 가족들을 위해 일부러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행동한다”고 말한 뒤 주머니에서 작은 메모지를 꺼내 보여줬다. “돌아오면 천 배 만 배 더 챙겨줄 테니까 꼭꼭 살아 돌아와! 정말 많이 보고싶다. 교지편집부 진짜 사랑해.” 담담했던 그의 표정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에 대한 그리움이 짙게 드리워졌다.

진도 = 고서정 기자 himsgo@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