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선박직 직원 15명 전원에 대해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 적용을 검토하고 있는 검찰이 선장 이준석(69) 씨 등 선박직 직원들에게 승객 구조에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선원들은 최초 상황이 급박해 승객을 구조할 시간이 없다는 취지로 진술했지만, 탈출 전 선원들이 배에서 옷을 갈아입고 선사와 통화를 한 사실 등이 속속 확인되고 있는 것이다. 검찰은 이러한 정황들이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를 적용하는 데 주요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 구조 안 하고 옷 갈아입고 전화한 선원들 = 검찰 수사 등에서 세월호 선박직 직원들은 배에서 탈출하기 직전 옷을 갈아입었다는 사실이 잇따라 드러나고 있다. 기관장 박모(47·구속) 씨는 탈출 직전 입고 있던 근무복을 벗고 티셔츠 위에 구명조끼를 입었으며, 1등 항해사 신모(34·구속) 씨도 선실에서 점퍼를 입은 것으로 조사됐다. 신 씨는 ‘옷을 두껍게 입고 탈출하라’는 선장 이 씨의 지시를 듣고 옷을 갈아입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선장 이 씨는 미처 옷을 갈아입지 못했는지 근무복을 벗은 상태에서 속옷 차림으로 탈출했다.

선원들은 선체가 기울기 시작한 직후인 16일 오전 8시 55분부터 탈출 직전인 오전 9시 41분까지 청해진해운 관계자와 여러 차례 통화를 하기도 했다. 이날 오전 9시 세월호 1등 항해사 강모(42·구속) 씨는 청해진해운 담당자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고, 이 담당자는 9시 10분쯤 선장 이 씨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이 밖에도 여러 차례 전화가 오고 간 것으로 검찰은 파악하고 있다. 사고 인지부터 구조까지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는 또 다른 정황이라 할 수 있다.

검찰은 또한 청해진해운 측에서 선박 포기를 지시하지 않고, 승객 퇴선 관련 부적절한 지시를 내렸을 가능성도 의심하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청해진해운 관계자가 승객을 우선 대피시키라는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면 유기치사 혐의 적용도 가능할 것이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 살인의 ‘고의’ 밝혀내는 게 최대 관건 = 선장 이 씨 등의 신병을 인계받은 검찰은 앞으로 이 씨 등에게 살인의 ‘고의’가 있었다는 점을 증명하는 데 주력할 방침이다. 검찰 관계자는 “부작위에 의한 살인에서 미필적 고의는 ‘승객이 사망해도 상관없다’는 정도의 인식을 가지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을 때 성립할 수 있다”며 “구호 시간이 충분했다는 객관적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 만큼 앞으로 수사의 관건은 선박직 직원들의 주관적 의사를 증명하는 데 초점이 맞춰질 것”이라고 말했다.

관련 판례 등에 따르면 세월호 직원들이 승객 개개인에 대한 살인의 고의가 있었다는 것으로 입증돼야 한다. 이에 따라 승객들로부터 구체적인 구호 요청을 받았다는 사실이 있는 선박직 직원들이 우선적으로 살인죄 적용 대상이 될 수 있다.

검찰 일각에서는 살인의 피해자를 사망한 세월호 승무원 등으로 특정하는 방법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숨진 승무원 박지영(여·22) 씨 등이 선장 등에게 행동 지침을 요구할 당시, 이들이 사망해도 상관없다는 인식을 가지고 선내 대기 명령 등을 내렸다면 살인죄 적용이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목포 = 김병채·김대종 기자 haass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