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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낮 12시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동 B유흥주점. 대낮인데도 손님들이 가득차 있었다. 유흥주점이면 술 마신 취객들의 왁자지껄한 소리와 노랫소리가 넘쳐나야 제격이지만, 코골이 소리만 흘러나왔다. 잠이 부족한 ‘낮잠족’ 직장인들이 유흥주점 ‘룸’에서 꿀맛 같은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한 잔 커피값으로 5000원을 내면 소파에 쿠션은 물론, 담요와 베개까지 갖춰진 ‘룸’ 안에서 다리 펴고 단잠을 청할 수 있다.

최근 대낮 유흥주점이 과로에 시달리는 직장인들 사이에서 새로운 휴식처로 각광받고 있다. 안락하고 밀폐된 공간이란 특성 탓에 직장상사 눈을 피해 안심하고 한숨 ‘푹’ 잘 수 있기 때문이다. 여의도 일대에만 10여 개 유흥주점이 대낮에도 문을 열고 영업하고 있다.

이들 업소들은 ‘오전 11시∼오후 2시 커피판매’ 등 대낮 영업을 한다는 사실을 안내하고, 업소를 찾은 고객에 대한 서비스 차원에서 커피를 주문하면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룸’을 제공한다.

B유흥주점 관계자는 “대부분 4∼5명의 직장인이 함께 찾아와 룸 한개를 차지한 채 휴식을 취한다”면서 “점심시간에는 업소에 마련된 15개 룸이 부족할 정도로 직장인들이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이 같은 틈새 영업은 불법은 아니다. 영등포구청 관계자는 “최근 이 같은 영업을 하는 경우가 많아 불법성 여부를 검토했으나 유흥주점은 주류 외에 차 등 음료도 판매할 수 있는 만큼 불법은 아니라고 판단했다”면서 “유흥주점이 대낮 시간을 이용해 틈새 영업을 하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병원도 오후 ‘낮잠’을 원하는 직장인들의 편안한 쉼터가 되고 있다.

서울 중구의 한 무역회사에 다니는 이모(32) 씨는 회사 근처 내과의 단골 손님이 됐다. 특별히 아픈 곳은 없지만 편하게 누워 쉴 수 있어 1주일에 2∼3차례 병원을 찾아 수면을 취한다. 이 씨는 “을지로 일대 내과와 통증 클리닉에는 점심시간대 20∼30대 직장인들이 몰려 침대가 여유가 없을 정도”라고 귀띔했다.

병원 관계자는 “많을 때는 하루에 30여 명이 점심시간 등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한 번에 3만 원 이상 하는 영양주사를 맞으러 온다”며 “이런 환자들 중 절반 이상이 1시간 이상 수면을 취하고 있어 하루 전 예약은 필수”라고 말했다.

이처럼 병원을 이용하는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윤용선 대한의원협회 회장은 “진짜 몸이 아픈 환자들의 자리를 빼앗을 수 있는 만큼 병원이 너무 과도하게 이 같은 방식으로 진료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근평 기자 istandby4u@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