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품업체로부터 뒷돈을 받아 챙긴 롯데홈쇼핑 중간간부들이 기소되면서 이들이 그동안 관행처럼 여기며 지속적·조직적으로 저질러왔던 비리의 실체가 구체적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1부(부장 서영민)가 수억 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한 이모(47) 전 롯데홈쇼핑 생활부문장과 정모(41) 전 MD(구매담당자)에 대한 공소사실에 따르면 이들은 방송 시간대와 횟수에 편의를 제공해주는 조건으로 납품업자들에게서 장소를 불문하고 지속적으로 금품을 받아왔다. 또 현금과 수표는 물론, 가족 명의 계좌이체, 고급 승용차 등 금품의 종류를 가리지 않았다. 이 같은 행태는 박근혜 대통령이 엄단하겠다고 밝힌 대기업 ‘갑질’의 전형이어서 롯데홈쇼핑에 대한 향후 정부의 조치가 주목된다.

◆방송 시간·횟수 편의 대가= 롯데홈쇼핑 임직원이 뒷돈을 받으면서 내민 무기는 방송시간과 횟수였다. 이 전 부문장은 롯데홈쇼핑 방송부문장으로 근무하면서 홈쇼핑방송을 통한 제품판매 개시(론칭), 방송지속 여부 판단, 방송시간대 편성 등의 업무를 총괄했다.

이 전 부문장은 2008년 12월 온돌마루 업체 대표 김모 씨로부터 “홈쇼핑에서 원하는 방송시간대에 광고가 나갈 수 있도록 힘써 달라”며 금품을 받았다. 시간대뿐 아니라 방송 횟수의 편의를 제공해 달라는 내용도 금품 수수 명목에 포함됐다. 일반 직원인 정 전 MD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지난 2007∼2010년 홍삼농축액, 다이어트 제품을 판매하는 업체의 정모 대표로부터 방송시간대·횟수 편의 제공 목적으로 5차례에 걸쳐 2억2800만 원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롯데홈쇼핑 임직원들의 비리 행위는 신헌(60) 롯데쇼핑 사장의 재임 시절 집중됐다.

◆방송 때마다 지속적 뒷돈= 이들의 ‘상납 요구’는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 전 부문장은 온돌마루업체 김모 대표로부터 2008년 12월 300만 원을 송금받은 것을 시작으로 2011년 4월까지 총 63회에 걸쳐 5억4370만 원을 받았다. 다이어트 제품 업체 박모 대표로부터는 2008년 12월부터 2011년 4월까지 16차례 총 2억900만 원을 수수했다.

갈비탕 업체 이모 대표에게서 총 3550만 원을 수수할 때도 지속적으로 상납이 이뤄진 사실이 확인됐다. 2009년 1월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음식점에서 100만 원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이 전 부문장은 2011년 7월까지 24회에 걸쳐 “갈비탕 제품이 방송에 계속 나갈 수 있게 해 달라”는 이 대표의 청탁과 함께 10만원권 수표를 주로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 전 부문장이 9억 원대 뒷돈을 받은 것은 6명의 업체 대표로부터 127회에 걸쳐 이뤄진 것으로 드러났다. 정 전 MD는 홈쇼핑을 통해 판매되는 물품의 기획, 론칭, 방송 지속 여부, 방송시간대 편성 등의 업무를 담당했고, 홍삼농축액 대표에게서 2007년 8월부터 2010년 1월까지 방송이 나가는 중간중간 뒷돈을 받았다.

◆현금·수표·이체·승용차 등 금품 형태 다양= 중간간부들의 금품을 수수하는 방법은 현금 외에도 수표, 가족 명의를 이용한 계좌 이체, 현물 수수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대담했다. 이 전 부문장은 전처의 은행계좌를 이용해 유리밀폐용기 업체 정모 대표로부터 300만 원을 송금받는 등 총 19회에 걸쳐 1억여 원을 받았다. 다이어트 업체 박모 대표에게서 2억여 원을 수수할 때는 부친의 계좌로 송금받았고 때로는 아들 명의의 계좌를 이용했다. 갈비탕을 판매하는 이모 대표로부터는 10만원권 자기앞수표 10장을 한 번에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정 전 MD는 2억 원을 수수한 것 외에도 2800만 원 상당의 승용차를 전달받기도 했다.

◆장소 가리지 않고 수수= 상납의 시작은 대부분 롯데홈쇼핑 사무실이나 인근의 식당에서 이뤄졌다. 이 전 부문장은 2011년 4월 롯데홈쇼핑 사무실에서 유리밀폐용기 정모 대표에게 편의를 봐주기로 약속했고 이후 은행 계좌를 통해 돈을 받았다. 다이어트 제품 업체 박모 대표와 첫 상납 관계를 맺은 것은 롯데홈쇼핑 인근의 한 식당이었다. 첫 상납관계를 맺은 이후에는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주차장, 술집, 한식당, 음식점 등 다양한 곳에서 현금과 수표가 오갔다. 이들이 술집 등에서 접대받은 비용은 검찰 수사결과에 포함되지 않은 만큼 이 같은 접대비까지 더한다면 액수는 훨씬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박정민·김동하 기자 bohe00@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