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잇단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사고로 개인정보 보호와 금융보안이 금융권 신뢰를 좌우할 핵심 키워드로 부상하고 있다. 신한금융이 경기 용인시 디지털밸리로에 금융권 최대 규모로 신축한 ‘신한통합데이터센터’에서 직원들이 전산시스템을 점검하고 있다. 용인 = 심만수 기자 panfocus@munhwa.com

개인정보 유출사태로 국민들의 불신이 심화되면서 정보보안이 기업 경영의 성패를 좌우할 핵심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올들어서만도 세계 3위 규모에 달하는 1억500만 건의 카드3사 발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과 2차 유출사태, 1200만 명의 KT 고객정보 유출, 연이어 보험사, 소셜커머스, 인터넷쇼핑몰까지 금융·비금융 분야 가릴 것 없이 불거진 상태다.

특히 소비자의 신뢰를 먹고 사는 금융 분야의 경우 정보보안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비자보호의 보루로 통한다. 그동안의 낡은 금융관행, 관리감독 부실, 허술한 내부 통제시스템을 제로베이스에서 접근해 혁파하려는 움직임이 수면 위로 급부상할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잇단 금융사고의 재발을 막기 위해 내부 통제를 강화하고 고객정보 보호 사각지대를 혁신함으로써 이제는 안전불감증과 단호히 결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는 것이다.

전성인(경제학) 홍익대 교수는 “최근 금융권의 잇단 금융사고는 기강 해이에서 비롯된 점도 있다”면서 “앞으로 감독체계의 정비와 함께 각 금융사의 소비자보호 시스템을 획기적으로 강화해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정보수집·보유 제한과 정보공유 제한, 불법정보 수요 차단 등을 뼈대로 한 금융당국의 개인정보 유출 재발 방지 종합대책과 궤를 같이해 시중·국책은행들이 전자금융사기 방지, 고객정보 보호 준칙, 정보보호 조직 신설 및 강화, 인터넷뱅킹 거래 보안 정비 등을 서두르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금융 분야의 대형 전산사고, 정보 유출, 전자금융사기의 지능화·다양화로 국민들의 불안감이 높아지는 만큼 괄목할 수준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KB국민은행은 개인정보의 오·남용 방지를 위해 고객정보 보호 준칙을 배포하고, 정보보호 조직을 부에서 본부로 승격시키는 등 고객정보 보호 전담조직을 통합 관리하는 데 나섰다. 전자금융사기 방지를 위한 가입 이벤트도 진행했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정보보호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 주기적으로 전 임직원을 대상으로 고객정보 관리교육을 실시중”이라고 말했다.

하나은행은 지난 1월 말에 고객정보보호부와 정보기술(IT)보안부를 둔 고객정보보호본부를 새로 만들고 이동식저장장치(USB)나 이메일 등 고객정보를 대량으로 외부에 유출시킬 위험성이 있는 채널의 경우 부점장 승인을 받던 것을 본부 승인체계로 바꿔 강화했다. 하나은행 전산센터는 네트워크를 완전 분리하는 물리적 망분리를 적용해 지능형지속위협(APT) 등 사이버 공격에도 방어할 태세를 갖췄다.

우리은행은 지난 3월 28일 1등급 보안매체인 OTP(1회용 비밀번호) 발생기를 쓰는 고객은 동일 한도로 이체할 수 있지만 보안카드만 쓰는 고객은 한도를 대폭 줄였다. 전자금융사기에 악용되는 보안카드 사용 감축을 유도하기 위한 조치다. 지난해 11월부터는 인터넷뱅킹·스마트뱅킹 이용 고객을 대상으로 사전에 지정한 계좌로만 송금되는‘원터치 안심이체 서비스’도 출시했다.

신한은행은 정보보안실을 정보보안본부로 승격시켰다. 또 중국 등 해외IP에서 로그인한 사실이 있는 경우 국내IP로 로그인할 때 해외IP 접속사실을 인터넷뱅킹 팝업으로 공지하고 해외IP에서 인터넷뱅킹 주요 거래를 차단하는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신한지킴이’로 이름 붙인 내부자 신고제도를 운영해 금융사고를 방지하고 ‘신윤리경영제도’를 통해 내부 통제의 고삐도 죄고 있다.

도서벽지에 점포가 많아 전자금융사기의 타깃이 되고 있는 NH농협은행은 범죄에 악용되는 대포통장 발생사무소에 대한 관리전담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하는 한편, 수시입출식 통장 개설 절차를 강화했다. 앞서 지난 1일부터는 정보보안본부를 신설하고 외부 전문가를 부행장급 정보보호최고책임자(CISO)로 임명했다. 농협 관계자는 “입체적인 보안체계를 구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KDB산업은행은 휴대전화 문자메시지(SMS) 인증을 줄이고 보다 안전한 2채널 인증인 ARS 인증방식을 확대해 본인 확인을 위한 추가 인증에 필요한 ‘빗장’을 걸었다. 스미싱을 통해 악성코드가 설치돼 전자금융사기에 이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우수고객과 다이렉트 상품 신규 개설 고객에게는 OTP 발생기를 수수료 없이 보급했다. 산은 관계자는 “인터넷뱅킹 이용 고객의 90% 이상이 OTP를 쓰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사들의 이 같은 노력 외에도 제도적 장치를 보다 완비해야 보안 누수의 빈 틈을 차단할 수 있을 것이란 의견도 나오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전자금융사기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보안카드를 없애고 OTP 발생기를 의무화 또는 활성화하고 지연이체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독일은 자행 및 타행이체에 2∼3일, 미국과 싱가포르는 1∼3일이 소요된다. 또다른 관계자는 “대포통장 개설 명의인에 대한 정부 차원의 제재를 더 강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문송천 카이스트 경영대 교수는 “금융사들도 과거와는 차별화된 정보유출 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을 것”이라며 “정보보안을 포함한 전반적인 데이터 인프라를 기술적으로 보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민종 기자 horizo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