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정기/논설위원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이제 어느 누구에게도 낯설지 않다.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는 갈수록 노래로, 더러는 책 제목으로 더 자주 애창 또 애송되고 있다. 지난 3월 4일 조희대 대법관이 취임사에서 “헌법이 선언하는 바와 같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고 강조한 것이 듣기 나름으론 좀은 식상하게 느껴졌을 정도다.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언제 읽어도, 또 언제 다시 들어도 장엄하다.

이국운 한동대 교수가 선창(先唱)한 대로 헌법 전문의 주어 ‘우리 대한국민’을 앞세워 고쳐읽으면 그 느낌 곧 전율이다;

“우리 대한국민은 말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우리 대한국민은 말한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우리 대한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우리 대한국민으로부터 나온다.”

2월 중순 이래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증거조작’으로 국가 최고 정보기관 국가정보원과 사정(司正)의 중추 검찰은 한마디로 일패도지(一敗塗地) 바로 그것이다. 말도 안되는 사건이 형사사법 체계의 대내외 신뢰 문제를 포함해 그 국기(國基) 저 국기(國紀)를 다 흔들고 있다. 그래서 서둘러 형사소송법전을 편다, 헌법 제1조처럼 다들 읽고 읽고 또 읽어 낯설게 느껴지지 않을 만큼 시대적 의미가 심장한 금과옥조(金科玉條)를 찾아 ‘형소법 특1조’로 묶기 위해….

있다. 시의에도 딱 맞은 증거의 원칙들….

하긴 증거재판주의, 자유심증주의, 자백(自白)의 증거능력 제한, 전문(傳聞)증거의 증거능력 제한 가운데 그 어느 한 원칙인들 가벼우랴. 그래도 헌법 제1조를 좇아 ‘특1조’의 2개항으로 다시 묶자면 그 무게 다시 재야 할밖에.

1. ‘범죄사실의 인정은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정도의 증명에 이르러야 한다’(현행 형소법 제307조 2항).

2. ‘적법한 절차를 따르지 아니하고 수집한 증거는 증거로 할 수 없다’(현행 제308조의2).

1과 2 모두 모두 증거법 체계 정비 차원에서 2007년 6월 1일 신설돼 2008년 1월 1일부터 시행돼왔다. 1은 1954년 9월 23일 제정돼 그해 10월 14일부터 시행된 첫 형소법 제307조 ‘사실의 인정은 증거에 의하여야 한다’를 1항으로 돌리고 후열시킨 그 2항이다. 형사재판에서의 사실 인정은 민법의 예처럼 증거의 상대적 우월성이 아니라 ‘합리적 의심을 넘는 정도(beyond reasonable doubt)’의 증명이어야 한다는 글로벌 스탠더드의 재확인이다. 당시 국회도 별 논란 없었다.

2의 위법수집증거 배제 원칙은 크게 달랐다. 말도 탈도 곡절도 다 많았더랬다. 한 해 앞서 2006년 9월 25일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공청회에서 “위법수집 배제의 법칙을 인정하고 있는 미국이나 일본에도 법률에 명문 규정은 없으며, 위 법칙은 그 본질에 비춰 명문화하는 게 적절찮다”는 반대 의견도 만만찮았다. 그러나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적법절차의 원칙을 증거법에 구체화하는 의미”라는 법무부 측 주장이 그런 반대론을 압도했다던가,

만약 그때 명문화하지 못했으면 어떻게 돼왔을까. 미국은 수정헌법 제4조(수색 및 체포영장)를 위반해 얻어낸 증거는 형사재판에서 증거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판례를 다져왔다. 그러나 한국의 종전 판례는 “위법한 증거라도 물건 자체의 성질과 형상에 변경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므로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는 식이었다. 일컬어 형상불변론이(었)다. 다분히 실용주의로 기울었던, 그런 대법원이 2007년 11월 15일 판례를 변형해 증거능력을 부인했다(2007도3061). 개정 제308조의2가 시행되기 한 달 보름 전이었다. 아무튼…, 왜 진작 형사사법의 새 프런티어를 열지 못했을까. 못내 아쉽다.

이 교수처럼 헌법의 주어…아니, 헌법의 주인 이름으로 특1조를 열독하다보면 언젠가 ‘간첩사건 증거 조작’ 같은 건 옛날 옛날 한옛날 일화로 풍화할 것이다. 안 그런가.

“우리 대한국민은 말한다. 범죄사실의 인정은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정도의 증명에 이르러야 한다.”

“우리 대한국민은 말한다. 적법한 절차를 따르지 아니하고 수집한 증거는 증거로 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