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나선화 문화재청장은 “수많은 난제들의 해답이 결국엔 현장에 있다”며 수십 년간 쌓은 현장경험을 문화재 정책에 적극 반영할 것을 강조했다. 27일로 취임 3개월을 맞는 나 청장이 문화재청 이미지 쇄신 방안과 앞으로의 계획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연수 선임기자 nyskim@munhwa.com

“어려운 자리인 걸 알았다. 그래서 더 의지가 생겼다. 숭례문 부실공사 논란으로 안팎으로 비판을 받는 와중에도, 자체 개선 의지가 빈약해 보였기 때문이다. ‘모든 답은 현장에 있다’는 말이 있지 않나. 수십 년간 현장에서 쌓은 경험과 대내외 다양한 의견을 폭넓게 수렴해 문화재 정책 신뢰 제고에 힘쓰겠다. 문화강국 기반 조성에 일조하고, 새로운 문명기에 대한민국이 문화리더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나선화(65) 문화재청장의 말이다. 숭례문 부실공사 논란과 반구대 암각화 물막이댐 건설 여부 등 그 어느 때보다 문화재계가 어수선한 때에 청장직을 수락했다. 27일로 취임 3개월이 되는 나 청장을 최근 서울 종로구 안국동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만났다. 취임 후 맞이한 가장 큰 ‘해프닝’, 최종덕 전 숭례문복구단장의 ‘숭례문 세우기’ 책 발간과 전 국민적 질타의 대상이 된 문화재청의 이미지 쇄신 방안, 또 문화재의 가치와 효용성, 청장으로서의 장·단기 목표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숭례문 부실공사 논란으로 어수선한 시기에 취임했습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요. 청장직 수락 때의 심경이 궁금합니다.

“정말 어깨가 무거웠습니다. 주로 현장에서 문화재 관련 일을 했는데, 이제는 제 언행이 정부와 문화재청의 이미지를 대변한다는 사실이 큰 부담이 됐습니다. 하지만 문화재 관리부실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청을 바라보면서 그 원인 분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잠재돼 있던 여러 문제들이 한꺼번에 나타나 외부 비판을 받으면서도 내부적으로 자체 개선의 의지가 빈약해 보였거든요. 많은 분들이 “평소 하던 대로 하면 될 거야”라며 저의 참여를 요청했고, 어려운 때이니 한번 해보자 하는 의지가 생겼습니다.”

―취임 3개월. 아직 짧은 시간이지만 학예사나 문화재위원으로 활동하던 때와는 어떻게 다른지요.

“문화재 보존·관리·활용에 관한 일을 수행한다는 점에서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다만 문화재청의 업무영역이 전국적이고, 또 구석기시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굉장히 넓어서 타 부처나 지방자치단체와의 관계, 국민들의 의견 등을 폭넓게 수렴해야 하는 등 고려할 사항이 많습니다. 그러나 문화재계 수많은 난제들의 해답도 결국 현장에 있다고 믿습니다. 제 현장 경험과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서 정책의 신뢰 제고에 힘쓸 예정입니다.”

―취임 초반,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이나 단기 목표는 무엇입니까.

“사기 진작입니다. 취임식에서도 어려운 시기를 잘 이겨내기 위해 서로를 탓하기보다 상처를 감싸주고 위로해 주자고 했습니다. 그런 업무환경을 만들고, 청 직원 모두가 투명하고 정확한 바른 잣대를 사용해 손상된 문화재청의 신뢰를 회복해야겠지요. 또 올해 정책목표로는 ‘문화유산 안전과 수리품질 고도화’ ‘합리적 문화유산 보존체계 강화’ ‘문화유산 미래가치 창출’로 삼았습니다. 이를 통해 문화재 상시모니터링 시스템 보완, 수리기술자 자격 강화, 발굴조사 국가 부담 확대, 무형문화유산 데이터베이스(DB) 구축 등이 이뤄집니다.”

―그런데 취임 석 달이 채 되지 않아 비교적 큰 소동이 있었습니다. 최 전 숭례문복구단장의 ‘숭례문 세우기’라는 책 때문인데요. 내용과 발간 시기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습니다.

“숭례문 복구 과정을 개인일지로 기록했다는 점 자체는 문제 삼지 않습니다. 그러나 숭례문 부실복구에 대해 감사원 감사 및 수사기관의 조사가 진행 중인 매우 엄중한 상황에서, 숭례문 복구공사 총괄 책임자가 사회적 불신과 논란을 심화시킨 게 안타깝습니다. 필자는 답답한 마음을 토로하고 싶은 의도였다고 하지만….”

―말씀한 대로 숭례문 공사 과정이 아직 감사 중입니다. 이에 대한 청장으로서의 입장과 향후 계획은 무엇인지요.

“숭례문 복구공사가 국민적 염원과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단청 박락과 목재 바꿔치기 의혹 등 각종 사회적 논란을 일으킨 점, 국민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 원인으로 지적된 잘못된 관행과 제도 등을 혁신적으로 개선해 재발 방지에 힘쓰려고 합니다. 앞으로 감사원 감사와 경찰청 수사에서 드러난 문제점은 한 치의 의혹이 남지 않도록 투명하게 공개할 계획입니다. 책임 소재도 분명하게 가려 엄중하게 물을 생각입니다.”

―문화재계가 ‘비리집단’으로 낙인 찍히는 듯합니다. 묵묵히 일해온 사람들도 많은데 말이죠. 이미지 쇄신에 청의 역할이 큽니다.

“효율성과 도덕성을 함께 높여 나갈 겁니다. 숭례문 부실공사 논란은 법, 규범보다 수행자가 방만, 나태한 탓이 큽니다. 점검, 감리제도, 공개 책임실명제 등 제도 개선과 함께 문화재 가치에 대한 인식 교육도 강화해야 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얼’을 지키는 가치를 알았다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기술적으로는 전통재료와 기법을 되살리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생각입니다. 여기에 현대 과학기술을 접목, 좀 더 효율적인 복원 방안도 수립할 겁니다. 문화재 복원은 당대의 정신과 미적인 감각까지 재현해야 하니까요.”

―그렇다면 청장께서 생각하는 문화재의 가치, 그리고 효용성이란 어떤 것인지요.

“수백, 수천 년의 시간을 간직한 보물이 주는 영감은 그 어떤 걸로도 대체할 수 없습니다. 세계가 하나의 문화권으로 융합돼 가는 새로운 문명기,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자원은 세계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해주는 문화원형, 즉 문화재입니다.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반가사유상’을 봤습니다. 문화재를 통해 얻은 영감으로 훌륭한 시가 완성됐죠. 문화유산을 향유하는 효용성 중 하나입니다.”

―일련의 사태와 언론의 보도 방향을 보면, 행정가와 연구자, 또 일반 국민이 문화재를 바라보는 시선에 큰 차이가 있어 보입니다.

“맞아요. 일부는 침소봉대되는 경우도 있었고, 사건의 진실보다 질타성, 고발성 보도 등으로 곤경에 처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은 모두 앞으로 잘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서 보다 투명하고 책임 있는 문화재 행정을 펼치려고 합니다. 시선 차이는 소통으로 좁혀야죠. 특히 문화재의 가치를 젊은 세대가 함께 계승하고 지켜 나가도록 젊은이의 소통언어, 소통방법으로 나누는 방안도 강구 중입니다.”

―그 가치와 효용성을 인식한 지자체들이 최근 문화유산과 관광을 연계시키고 있습니다. 특히 발굴 문화재에 대한 활용 노력이 증대되고 있습니다.

“발굴 매장문화재는 성격상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 정체성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따라서 지자체에서 전시 등을 통해 문화관광자원으로 활용하려는 욕구가 크죠. 청에서 국가귀속문화재의 보관관리기관을 지정할 때 가능하면 출토지역에서 보관관리 및 전시, 활용될 수 있도록 지자체, 지역 박물관으로의 관리 위임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다만 지자체에서도 전시관 시설 및 전문 인력에 대한 적정한 투자와 노력이 수반돼야 하겠죠.”

―국민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산적 과제가 많습니다. 수년째 지속되고 있는 울산 반구대 암각화 물막이댐 건설 여부도 그중 하나인데요.

“이미 지난해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함께 대안을 결정했습니다. 올해 두 번(1월 16일, 2월 20일)에 걸쳐 문화재위원회 건축문화재분과에서 이와 관련한 심의가 있었습니다. 1차 심의에서 위원회가 자료 보완 제출을 요구하며 ‘보류’되었고, 2차 심의에서는 안건의 중요성을 감안해 세계유산분과와 합동분과위원회의 구성을 제의했습니다. 충분한 논의 과정을 거쳐 신중하게 결정할 예정입니다.”

―임기 동안의 지향점은 무엇입니까. 장기적인 목표라고 한다면.

“문화재청의 궁극적인 역할은 문화산업시대의 자원을 축적하는 겁니다. 이를 통해 문화강국 기반이 조성되는 것이지요. 소멸돼 가는 아시아 전역 무형문화유산을 조사·수집해 아시아 전통문화자산을 확보할 계획입니다. ‘전통과 현대의 조화’도 문화재 정책의 기본 방향으로 세웠습니다. 여기엔 학술적인 부분도 포함됩니다. 한국문화 고대(古代) 네트워크 복원으로 한국 역사문화 영역 확대에도 일조할 생각입니다.”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