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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 부실공사 논란으로 경질된 변영섭 전 문화재청장의 후임으로 나선화 청장이 선임됐을 때, 문화재계 전반에서는 “현장과 행정 경험을 두루 갖춘 적임자”라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나 청장은 서울 출신으로 이화여대 사학과 졸업 후 이화여대박물관에서 학예실장 등으로 35년간 재직했다. 매장·동산·무형문화재 등 다양한 분야의 문화재위원을 거쳤고 한국큐레이터포럼 회장과 한국박물관학회 이사도 지냈다. 청장 선임 직전까지는 ‘생명과평화의길’ 상임이사를 맡았다.

독신인 나 청장은 스스로 “내게 일은 그 자체로 놀이였고 힘들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고 말할 정도로 열정적으로 활동했다. 이대박물관에 재직하는 동안에는 대학교수 못지않은 역할을 했는데, 한국 도자사 확립의 계기가 된 경기 광주시 등지의 조선시대 백자가마터를 발굴했다. 민속품 영역에 머물던 옹기를 미술사 연구대상으로 끌어올린 전남 영암군 구림리 옹기가마 발굴도 그의 손을 거쳤다. 문화재계 인사들이 한결같이 ‘여걸’이라고 그를 평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특히 1970∼1980년대엔 주변 기자들에게 ‘특종’을 안겨주는 ‘산타 학예사’였다.

“집에서 여대를 가라고 했고, 인문대에 가라고 해서 들어선 길이죠. 처음에는 재미가 없었는데, 어느 날 경북 경주에 다녀오신 교수님이 안압지 발굴 사진을 보여주고 칠판에 알쏭달쏭한 돌을 그리는데 호기심이 막 생기더라고요. ‘아 저거, 내가 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졸업 후에 모교 박물관에 들어갔고 최완식 간송미술관 연구실장, 고 임창순 서예가 등 당대 최고의 ‘선생님’들과 교류하고 공부할 수 있었어요.”

나 청장이 처음 참여한 발굴조사는 남한지역 최고의 벽화고분인 경북 영주시 순흥면의 신라벽화고분이다. 그 후 청동기시대 지석묘에서 최초로 세형동검이 출토된 발굴과 1973년 경주 천마총 발굴 때 경주 인왕동 신라목곽적석분 발굴조사, 1980년대 서울 잠실지구 개발 때 지금 한성백제 영역인 가락동의 석실분도 발굴했다. 특히 그는 한국 도자사 연구에 한 획을 그었는데, 35년간 몸담았던 이대박물관은 도자기 명품을 많이 소장한 곳으로 유명하다. 1983년부터 전남 강진군 청자도요지 발굴을 시작으로 나 청장은 도자기 관련 유적 발굴에 집중했다. 그 결과 최초로 조선백자 관요터를 발굴해 15∼16세기 조선백자의 생산기술과 운영체계를 밝혔고 영암군 구림리에서 8∼9세기 도기 제작 가마터를 발굴했다.

무엇보다 나 청장은 학생, 시민들과 함께하는 문화유산 관련 교육, 아카데미 프로그램에도 다양하게 참여했다. 이는 그가 청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문화재청의 ‘소통 방식’에도 적잖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나 청장은 “문화재의 가치가 미래를 움직이는 힘이라는 걸 젊은 세대에게 알려주고 싶다”며 “청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강구 중”이라고 말했다.

나 청장이 고고학과 고대사 등 교육 분야를 특히 강조하는 건 모든 판단이 경제적 기준에 의해 이뤄지는 현 세태 때문이다. 그는 “최근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 ‘모뉴먼츠 맨’을 보았느냐. 히틀러가 숨긴 기가 막힌 예술품엔 시큰둥하면서, 금괴가 발견되자 전 세계 언론이 열광하는 장면이 나온다. 지금도 그때와 다르지 않다”고 씁쓸해했다.

20여 년 전부터 청소년들과 유적발굴·고고학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해온 그는 “학생들이 실습용 옹기 조각 등을 캐내어 ‘이거 얼마짜리예요?’라고 제일 먼저 묻는데 너무 충격적이었다”며 “이런 풍조 속에서 우리 전통 가치, 정신을 온전히 전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