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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0년 개발에 들어간 지 11년 만에 국산 고혈압 신약 ‘카나브’를 내놓은 보령제약은 요즘 속병을 앓고 있다. 500억 원이 넘는 자금을 투자해 신약 개발 결실을 봤지만 오히려 수익성 악화를 걱정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카나브는 고혈압을 유발하는 안지오텐신의 활성화를 억제하는 작용을 하는 ARB(안지오텐신 수용체 차단제) 계열제로, 그동안 이 시장은 다국적 제약사인 노바티스의 ‘디오반’(성분명 발살탄·Valsartan)과 MSD의 ‘코자’(성분명 로자탄·Losartan)가 양분하고 있었다.

지난해 기준으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파악하고 있는 본태성(일차성·원인을 알 수 없는 환자) 고혈압 환자가 522만 명에 달하는 데다, 국산 신약에 대한 기대감 덕분에 카나브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다행히 괜찮은 편이다.

2011년 출시 후 매출 100억 원을 올렸고, 2012년(205억 원) 매출은 전년 대비 배를 기록했다. 지난해에도 350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고, 국내 시장에서의 상승세를 발판 삼아 멕시코를 비롯한 중남미 13개국 및 중국에도 수출 계약을 맺는 등 겉보기엔 국산 신약의 성공신화를 쓰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사용량 연동 약가인하제’라 불리는 해묵은 약가 규제 정책이 국산 고혈압 치료제의 글로벌 베스트셀러 등극에 발목을 잡고 있다. 시장의 호응이 좋아 많이 팔리면 팔릴수록 약가가 깎이는 불합리한 규제 때문에 거액을 투자해 신약을 개발한 제약사는 수익기반 악화를 감수해야 한다.

또 국내에서 책정된 약가는 수출가격을 결정할 때 해당 국가의 주된 참고자료가 되기 때문에, 국산 신약은 해외에 수출 시 국내에서 책정된 낮은 약가를 기준으로 제대로 된 가격을 받지 못하거나, 해외 현지 유통을 담당할 제약사가 ‘가격이 너무 낮다’며 현지 유통을 포기해 버리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25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2009년 1월부터 시행된 ‘사용량 연동 약가인하제’는 제약업계를 옥죄는 대표적인 악성 규제로 꼽히고 있다. 이 규제의 적용대상은 크게 4가지로, 해당되는 의약품의 약가는 강제로 인하시키도록 돼 있다.

▲유형1(건강보험공단과의 약가협상을 거쳐 등재된 의약품이 예상 사용량보다 30% 이상 사용될 경우) ▲유형2(사용범위가 확대된 의약품의 사용량이 시판 6개월 후 30% 증가한 경우) ▲유형3(유형1과 2로 협상을 거친 의약품의 사용량이 전년 대비 60% 이상 증가한 경우; 유형1을 거치지 않는다면 유형3의 조건에 해당된다고 하더라도 제외) ▲유형4(건보공단과의 협상을 거치지 않고 등재된 의약품의 사용량이 등재 4차연도에서 전년 대비 60% 이상 증가한 경우) 등이다.

정부는 지난해 제도를 보완, 유형3과 유형4에 청구금액이 전년 대비 60%까지 증가한 제품뿐만 아니라 이에 해당하지 않았어도, ‘청구금액이 전년 대비 10% 이상 증가하고, 절대금액이 50억 원 이상 증가한 제품’ 또한 약가협상에 따라 현재 약가의 최대 10%가 인하되도록 했다.

이에 따라 카나브도 매출 증가에 따라 최초 약가협상 당시 합의한 예상 사용량보다 30% 이상 증가한 ‘유형 1’에 해당돼 약가인하 대상이 됐다.

출시 당시 건강보험 등재가격은 120㎎ 한 알에 807원이었지만, 이달 1일부터 781원으로 깎였다. 한 알에 670원 하던 60㎎ 한 알의 가격 역시 사용량 증가에 따라 올해 하반기에 깎이게 될 처지다. 현재의 성장 추이를 볼 때 올해 이후 지속적으로 약가는 인하될 것으로 보인다.

시장에서 호응이 좋은 제품의 가격이 오히려 강제로 깎이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애당초 60㎎ 기준으로 카나브의 건강보험 최초 등재가격(670원)은 경쟁제품인 디오반(1014원)과 코자(910원)의 각각 66%와 74% 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낮았다.

이 같은 약가인하 규제는 신약 수출에도 악영향을 주고 있다. 국내 건강보험 등재가격을 기준으로 수출가가 결정되기 때문에, 미국시장엔 디오반(2310원)과 코자(2039원)의 절반도 못 되는 가격에 수출되는 판이고, 러시아와 멕시코에서도 이들 경쟁 제품의 절반 수준의 가격밖에 받지 못하고 있다.

보령제약은 2011년 카나브를 터키로 수출하기 위해 현지 제약사와 협상을 진행했지만 가격상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수출을 포기했다. 현지 제약사가 “한국 약가를 기준으로 유통되면 도저히 이윤을 남길 수가 없다”며 계약 체결을 거절했기 때문이다.

노기섭 기자 mac4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