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만이란 건 속이는 것이다. 말로 속이고, 증거와 데이터를 조작해서 속이고, 사실을 왜곡해서 속이고, 남의 것을 표절해서 자기 것인 양 속이고, 겉 다르고 속 다른 명분과 전략으로서 속이는 것이다. 기만은 인류의 오랜 병이다.

우리가 기만에 대해서 분노하고 비판하는 것 같지만 사실 기만은 인간 문화로 뿌리 깊이 자리를 잡고 있다. 세계 전쟁사에서 평화를 앞세우지 않은 전쟁이 없고, 군사력 증강을 꾀하면서 ‘전쟁 억지’의 명분을 내세우지 않는 적이 없다. 강대국의 명분과 전략, 그 이중성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또 올림픽에서는 세계 평화를 말하고 승부를 넘어서 친선과 우애를 말하지만 살벌한 메달 사냥 이상의 것이 없다는 것, 올림픽 정신이란 것은 다 알고 속는 것 아닌가?

우리 사회는 또 선거철이다. 거짓말과 꼼수의 공약(空約)이 난무하는 기만의 계절이다. 국민을 보기를 ‘표’같이 하고, 나라를 보기를 ‘표 밭’으로 보고, 민심(民心)이 아니라 표심(票心)만 잡으면 되는 게 선거다. 정치는 나라를 걱정하고 민생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걱정하는 척 하는 거짓말만 잘 하면 된다. 그러고도 당선이 되고 무탈하다는 것은 기만이 통한다는 이야기이니까, 그만큼 기만의 문화는 체질화 되어 있다는 이야기이다. 우리 자신도 그렇게 길들여져 있다는 이야기이다.

정치인들은 ‘국민을 위해서’ ‘시민을 위해서’ ‘십자가를 지겠다’는 소리들을 거침없이 한다. 이런 의문이 든다. 정치인들은 자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나 있을까? ‘국민을 위한다는 것’이 거짓말인줄은 알고 있을까? 그것도 모르지 않을까? 워낙 연기에 충실하다 보니까, 연기와 현실을 혼동하는 배우들처럼 자신의 연기에 스스로 속고 있지 않을까?

기만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다. 이익을 얻기 위해서다. 남들로부터 더 나은 대접을 받기 위해서, 또 더 많은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뿌린 대로 거두지 않고 잉여를 얻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그 이익이란 것은 어디까지나 한시적인 것이다. 장기적이고 지속적일 수 없다.

요즘 진화를 말하니까, 그런 차원에서 보자. 인류사의 기만, 기만의 문화, 이것이 진화에 어떤 영향을 줄까? 진화에 도움이 되는 것일까. 진화에서 도태하게 만드는 것일까? 간단하게 이야기하자. 인간을 속이고 세상을 기만하는 데는 성공할지 몰라도 자연, 자연의 법칙을 기만할 수는 없다. 기만의 문화라는 것, 자연에는 통하지 않는다. 차라리 재앙을 부를 것이다. 자연계의 변화를 읽고 변화를 수용할 수 있는, 자연과 정직하게 마주할 수 있는 감수성마저 실종되고 있다는 것이니까.

진화는 좀 추상적인 이야기라고 치고, 기만의 문화 이것도 막장으로 가면 어떻게 될까? 그것이 두렵다. 지금의 거짓, 왜곡, 조작이란 것은 그래도 직접적 폭력을 동원하지 않고 잉여를 획득한다. 그러나 그것도 막다른 골목으로 갔을 때, 기만의 평화적(?) 수단이 더 이상 통하지 않을 때, 그 다음은 무엇일까? 그 점이 두렵다.

배영순(경세학교 교사/ 전 영남대교수 baeysoon@yumail.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