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지난해 9월 8일 부산 사하구 감천항에서 러시아 선원 P(56) 씨가 휴대품 가방에 넣어 밀반입하려다 적발된 러시아제 고무탄총 1정, 가스탄총 1정, 고무실탄 20발 등 총기류. 부산세관 제공

“부산항 부두에 가면 수십만 원이면 권총 한 자루를 살 수 있다.”

이처럼 소문과 영화에서처럼 부산은 정말 총기 천국인가? 부산은 이 같은 오명에 20여 년째 시달리고 있다. 간간이 나오는 출처불명의 발언과 영화들이 이런 추측을 부추기고 있다. 지난해 8월 말에는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과 당원들의 회합 녹취록에서 나온 “그러면 어떻게 총을 구하느냐. 부산에 가면 있다”는 한마디로 부산은 다시 발칵 뒤집혔다. 경찰이 전면 총기점검에 나서는 등 비상이 걸렸지만 통합진보당은 ‘농담’이라고 해명한 데 이어 수사결과에서도 실체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결론적으로 여전히 한국은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총기 청정국가이고, 부산도 청정도시다.

부산에선 최근 10년 동안 이렇다 할 총기사고를 비롯해 총기관련 범죄, 밀수사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지난해 9월 8일 부산 감천항에서 러시아 선원들의 외과의사인 P(56) 씨의 휴대품 가방에서 러시아제 고무탄총 1정, 가스탄총 1정, 고무실탄 20발이 적발된 것이 최근 2년 동안 유일한 사례다. 부산세관은 군, 경찰 등 대테러 합동조사반과 함께 P 씨를 조사한 결과 이 총기가 인명 살상력이 없는 고무 및 가스탄총으로 P 씨가 러시아에서 호신용으로 구입했다가 한국법을 모르고 반입한 것으로 결론 내렸다.

부산세관의 최근 5년간 총기류 밀수적발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09년 실탄 114점, 2010년 BB탄 모의총기류 1점, 2011년 역시 같은 종류의 모의총기류 4점만이 적발됐다. 2012년은 아예 한 건도 없고 2013년은 앞의 사건이 유일하다. 2009년의 실탄 114점은 미군이 테러교육용으로 반입했지만 세관에 사전 신고를 안한 해프닝으로 끝났다.

이런데도 부산이 총기도시의 오명을 쓰고 있는 것은 1990년대 초·중반 선박수리소가 있는 감천항에 러시아 선박 및 선원들이 대거 들어오면서 일부 총기를 반입하고 사실상 유통된 사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조중혁 부산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장은 “당시도 총기사고와 직접 거래가 적발된 것은 거의 없지만 러시아 선원들이 자국 내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총기류를 수십만 원씩에 판다는 얘기가 돌았다”고 말했다. 조 대장은 “요즘은 선박수리 비용이 올라 러시아 선원 자체가 대폭 감소한데다 러시아에서 소지할 수 있는 간단한 모의총기류도 한국에 들어오는 순간 다 적발된다는 인식이 퍼져 총기류 반입은 거의 없다”며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감천항은 1990년대까지는 감시체계가 다소 허술했지만 이것도 옛날이야기로 지금은 감천항의 보안체제가 대폭 강화됐다. 부산세관과 군·경찰 등은 지난 2000년대 초부터 감천항에 대해 항만 기동 순찰 및 러시아 선원 불시검문과 휴대품 정밀검색을 통한 총기류 밀반입 단속 강화, 고성능 CCTV 및 X-레이 검색기 설치 등으로 전방위적인 감시체제가 작동되고 있다. 특히 현재 감천항은 선박수리소보다는 국내인들을 위주로 한 최신식 원양 및 연근해 수산물 기지로 운영되고 있다.

지난 2003년 터진 러시아 마피아 두목 피살사건은 부산에선 총기를 구할 수 있다는 세간의 상상력을 다시금 자극했다. 경찰 조사 결과 당시 마스크와 모자로 얼굴을 가린 러시아 킬러는 소음기를 부착한 쌍권총을 양손에 들고 러시아에서 수산물 무역을 위해 부산 영도구 아파트에 잠시 거주하던 다른 조직의 두목을 미행하다 아파트 1층 승강기 앞에서 5∼6발을 발사해 두목을 사살하고 도주했다. 당시 장면은 아파트 CCTV에 고스란히 찍혀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이 영화 같은 사건을 모티브로 부산에서 조폭들끼리 러시아 브로커에게서 총기를 구해 음습한 부두에서 총격전을 벌이는 ‘누아르’ 영화 여러 편이 흥행에 성공하면서 다시 부산은 총기도시가 됐다. 2005년 이병헌이 주연, 김영철, 황정민이 조연으로 나와 공전의 히트를 쳤던 ‘달콤한 인생’ 등이 대표적이다. 조직의 2인자였던 이병헌(선우 역)은 우연한 사건으로 조직 전체에 쫓기는 신세가 되자 부산에서 브로커를 통해 여러 종류의 총기를 빼앗듯이 구해 두목과 자신을 함정에 몰아넣었던 조직원들을 응징하게 된다. ‘아저씨’의 원빈은 물론 최근 영화 ‘화이’에서 배우 김윤석 등이 창고에서 총격전을 벌이고, ‘감시자들’에서 정우성이 저격용 총을 쏘는 장면도 한국에서는 가능하지 않은 허구일 뿐이다.

부산뿐만 아니라 한국 전체도 총기 청정지역이다. 관세청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전국세관에 적발된 총기류와 부품, 총탄은 1243점이다. 해마다 줄어드는 추세이고 적발장소는 인천공항세관이 942점으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나 이 중 실탄 1115발과 총기부품 43점을 제외하면 실제 총기류는 85점에 불과하다. 85점 중에서도 대부분은 공기총 등의 모의총기류이다.

또 국내에서 실제 총기와 비슷한 위력을 가진 사냥용 엽총 등은 사용을 하지 않으면 경찰서에 보관해야 하는 등 관리가 엄격하다. 실제 총이 아니라 모의 총포를 제작·판매·소지하거나 장난감 총기를 개·변조하는 것도 2년 이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 벌금형으로 엄격히 처벌하고 있다. 지난 2월 26일 한강에서 낚시꾼이 우연히 건져 올린 권총은 일제강점기 때 제작된 것으로 한국전쟁 때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단지 최근 캐나다에서 성공한 것처럼 3차원(3D) 입체형 프린터로 총을 집에서 제작할 수 있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도 있다.

부산 = 김기현 기자 ant735@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