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아베 정부의 대한(對韓) 외교 전략이 실망을 넘어 역겨움을 자아낼 지경까지 이르고 있다. 자신들은 한·일 정상회담을 하려고 하는데 한국이 거부하고 있다는 제스처를 취하면서, 실제로는 정상회담 성사에 역행하는 행태를 서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일반인들도쉽게 알 수 있을 만큼 노골적으로 그런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는 한국을 포함한 문명사회 전체에 대한 모독이기도 하다. 미국·중국은 물론 독일·폴란드 등 유럽 국가들까지 진정성이 결여된 일본을 비판하는 배경이다.

서울에서 12일 열린 한·일 차관급 대화는 전형적인 사례다. 1박2일 일정으로 방한한 사이키 아키타카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은 조태용 외교부 제1차관과 3시간 가량 협의를 가진 뒤 예정된 만찬도 취소한 채 국내 사정을 이유로 돌아갔다. 사이키 차관은 “아베 내각은 역대 내각의 역사 인식을 계승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같은 날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기자회견을 열고 “(위안부) 강제 연행은 없었다”고 강변했다. 오는 24∼25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릴 핵안보 정상회의에 맞춰 양국 정상회담을 해보자는 의사를 기록으로만 남긴 셈이다. 외교가에서 미국 등을 의식한 ‘할리우드 액션’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아베 신조 총리는 최근 ‘고노 담화’에 대해 재검토 입장을 밝혔고, 일본 정부 내에서 ‘위안부는 날조’라는 황당한 주장까지 나왔었다. 그래놓고 사무차관을 보내 ‘역사 인식 계승’ 입장을 밝히면서 마치 일본은 큰 양보를 하는데 한국이 거부한다는 이미지를 연출하려 한 셈이다. 지난해에도 양국에서 정상회담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높아지던 시점에 아베 총리는 야스쿠니 신사를 전격 참배했다. 한·일 사이에는 안보·경제 등 협력해야 할 부분이 수없이 많다. 일본 정부는 외교‘쇼’를 중단해야 한다. 한일관계 정상화에 재를 뿌리는 것은 물론 일본 국격 자체도 떨어뜨리고 있음을 직시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