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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역사학계의 화두는 ‘평화’다. 역설적이게도 현실이 ‘평화롭지 못해서’다. 강력한 원인제공자는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다. 우익세력을 등에 업고 고노담화 검증, 역사 교과서 수정, 평화헌법 개정 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아베가 국제사회에 내세우는 논리는 ‘적극적 평화주의’다. 언뜻 노르웨이 평화학자 요한 갈퉁이 연상된다.

그는 전쟁 없는 비평화구조를 ‘소극적 평화’라 비판하고 빈곤과 억압, 차별 등 구조적 폭력이 제거된 ‘적극적 평화’ 구축의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아베의 ‘평화’가 이와 다름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는 “아베 총리는 갈퉁의 용어를 비틀어서 편의적·자의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자위대의 해외 전개를 포함, 군사력의 공공연한 사용에 길을 트기 위해 ‘적극적 평화주의’를 주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아베는 자위대가 군사적 수단에 의한 국제 공헌에 소극적이었다는 점을 지적, 이를 ‘소극적 평화주의’라고 명명한 바 있다.

남 교수는 최근 역사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역사비평’(2014년 봄호)에서 이같이 밝히고 ‘평화주의’라는 보호색을 입은 아베의 ‘전쟁주의’(적극적 평화주의)를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 ‘기괴한’ 용어가 현재 일본 정치권과 일반인들 사이에 공공연히 유포되는 현실을 분석했다. 남 교수는 이를 위해 일본 전후 평화주의의 원류와 전개를 살핀다. 다시 말해 ‘적극적 평화주의’에 대한 ‘역사적 해명’을 시도한 것. 그러나 아베 정권의 행태를 두둔하려는 목적이 아니다. 감정적 반감이나 근거 없는 낙관주의에 경도되지 않고 ‘문제적 일본’을 직시하기 위해서다.

남 교수에 따르면 일본 전후 평화주의는 반군, 반전, 반핵을 원류로 생겨났다. 이후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 등 일본 주변 동아시아에서 벌어지는 전쟁의 현실 속에서 변형되면서 두 방향으로 분화한다. 그 하나가 ‘현실적 헌법평화주의’로의 하강이며, 다른 하나가 ‘유토피아적 절대평화주의’로의 상승이었다. 이후 전자는 ‘국가’ 이데올로기로 제도화되는 반면, 후자는 ‘국가’를 부인하고 ‘개인’의 심성 속에 내면화되었다. 일본 국민들이 헌법 개정과 군대 창설에 대해 복잡하고도 모순된 태도를 보이는 건 이러한 경험에 기인한다. 한국이 일본의 평화주의에 대해 원망과 실망, 기만과 한계를 동시에 느낄 수밖에 없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남 교수는 “국가 이데올로기로서의 평화주의와 개인 윤리로서의 평화주의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온 것이 ‘적극적 평화주의’”라며 “이것이 전후 일본인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평화지향의 심성과 현실의 안보 정책 사이의 괴리 속에 똬리를 틀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남 교수는 일본의 평화주의가 개인의 심성으로 침잠했던 이유에 대해 “일본의 평화와 동아시아의 비평화가 대립하며 공존하는 역설의 구조에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아베가 ‘적극적 평화주의’라는 외피를 쓰고 전후 평화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평화헌법마저 개정하려는 지금, 한국의 평화주의자는 이 ‘역설의 구조’를 깨뜨려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그는 “이 구조의 해체야말로 일본의 평화주의를 재생시키고 동아시아의 진정한 평화를 보장하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