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고구마 값이 폭락한 가운데 2월 20일 경기 여주시 대신면 우농영농조합법인 저장 창고에서 직원들이 제때 내다 팔지 못해 곰팡이가 핀 고구마를 골라내고 있다. 여주 = 김호웅 기자 diverkim@munhwa.com

“당장 감자 수매 가격을 10분의 1 미만 수준으로 낮춰야 할 판입니다.”

국내 구황작품 5대 유통업체인 우농영농조합법인의 이대영 대표는 지난 2월 20일 경기 여주시 대신면 저장창고에서 기자와 만나 “벌써 농가와 올해 수매를 놓고 사전 계약을 할 때가 지났지만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저장감자 값이 폭락하는 바람에 적자만 눈덩이처럼 쌓이고 있다”면서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 대표가 건넨 원가표를 보면 20㎏ 1박스를 팔 때 수반되는 비용은 농가 수매 가격 1만2000∼1만3000원, 보관비 2000원, 작업비(선별·세척·포장 등) 1000원, 박스값 1000원, 운반비 및 경매수수료 1000원 등 총 1만7000∼1만8000원가량이었다. 반면 가락시장 출하가는 고작 6000∼7000원 안팎에 불과했다. 1박스를 팔 때마다 1만 원 이상을 손해보고 있는 셈이다.

이 대표는 “대형마트 휴일 의무휴업이 지난해부터 본격화되면서 대형마트에 납품하던 물량의 20%가량을 가락 도매시장으로 내보내고 있다”면서 “공급물량이 한꺼번에 몰리자, 가뜩이나 생산량 과잉 여파로 약세를 면치 못한 도매가가 크게 폭락한 상황”이라고 털어 놨다. 대형마트 규제 여파가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격’으로 농산물 가격을 끌어내리고 있는 것이다.

농수산물의 경우 물량이 5%만 늘어나도 가격은 무려 30%나 떨어진다. 상대적으로 덜 하긴 하지만 고구마 농사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고구마 10㎏ 1박스의 가락시장 출하가는 1만 원 안팎을 기록하고 있다. 2년 전에 비해서는 거의 3분의 1 토막이 났다.

이 대표는 “농사를 짓기 전에 사전 수매 계약을 맺기 때문에 지난해만 해도 대형마트 규제 여파 등으로 인한 충격파를 우리와 같은 농수산물 유통회사가 중간에서 흡수했지만 올해는 더 이상 버틸 힘이 없다”면서 “올 6월에 수확하는 감자나 8∼10월에 수확하는 고구마의 경우 지난해 말이나 올초 사이에 이미 농가와 사전 수매 계약을 끝냈어야 했는데, 막대한 적자를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어 계약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적자를 면하려면 감자 1박스를 1000원에 수매해야 한다는 얘기인데, 어떤 농가가 그 가격에 팔겠느냐”면서 “밭을 갈아엎기 시작하면 올가을 이후에는 공급량 급감으로 인한 엄청난 가격폭등 부메랑이 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농가들이 전염병처럼 밭을 갈아엎기 시작하면 결국 올가을 이후에는 채소 값이 폭등하고 소비자의 장바구니 부담이 엄청나게 커질 것이란 얘기다. 이 대표는 “고구마, 감자뿐만 아니라 양파, 배추, 당근, 대파 등도 갈아엎어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가락시장에서 14년간 일해온 이용호 한국청과 경매사는 “강원 평창군 진부면에 저장 감자만 5000t가량이 있다는 소문도 있다”면서 “무값도 워낙 싸져 동반으로 가격이 하락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 여주시에서 고구마 농사를 짓는 김기섭 씨는 “생산원가가 평당 5000원대인데 요즘 시세가 생산원가도 안 나온다”면서 “올해는 3분의 1가량 재배 면적을 줄여야 할 판”이라고 토로했다.

올 4월로 2년을 맞는 대형마트 의무휴업 규제의 후폭풍으로 대형마트에 납품해온 농가뿐만 아니라 일반 농가의 피해도 이처럼 막대한 상황이다.

4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전국 148개 점포 중 110개 점포가 휴일 의무휴업을 하고 있는 이마트의 경우 의무휴업 여파로 연간 1조4000억 원(2011년 매출 기준)의 신선식품 판매가 감소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성장 없는 고용’도 한계점에 도달하고 있다. 이마트와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대형마트 3사에서만 의무휴업 규제 도입 이후 7000여 개 일자리가 사라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신규 출점이 막히면서 채용도 줄어 지역경기 침체를 부채질하고 있다. 2011년만 해도 10%에 육박하던 매출 신장률이 지난해 -3∼-4% 수준으로 뚝 떨어지면서 고용 여력이 현저하게 감소한 것이다. 반면 규제 도입 취지인 전통시장의 혜택은 전무한 상황이다. 대신 중견 유통회사, 온라인몰, 홈쇼핑 등이 어부지리의 이익을 얻고 있다.

정진욱(경제학) 연세대 교수팀이 최근 발표한 ‘대형 소매점 영업제한의 경제적 효과분석’ 논문에 따르면 대형마켓·기업형슈퍼마켓의 의무휴업에 따른 매출 감소액 중 20%가량만이 전통시장이나 슈퍼마켓으로 전환되는 것으로 추산됐다.

여주 = 이관범 기자 frog72@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