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꺼풀이 무겁고 몸에 힘이 빠진다. 식사만 하고 나면 머리가 멍해지고 손가락 하나도 까닥하기 싫어진다.’

봄만 되면 찾아오는 ‘춘곤증’의 증상이다. 춘곤증의 원인은 아직 의학적으로 명확하게 모두 밝혀지지 않았지만, 학계에서는 겨울 동안 움츠려 들었던 신진대사기능이 따뜻한 날씨에 활발해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일종의 피로로 보고 있다. 춘곤증은 질병이 아니라는 이유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기도 하지만 갑자기 쏟아지는 졸음이 교통사고나 산업재해 등 각종 사고의 원인이 될 수도 있어 주의할 필요가 있다. 또 졸림의 정도가 한 달 이상 지속되는 등 증상이 심해질 경우 수면장애 등의 각종 질환을 의심할 수도 있다.

춘곤증은 따뜻한 봄날씨에 누구에게서나 흔하게 나타날 수 있다. 낮이 길어지고 밤이 짧아지는 계절적 변화로 인해 활동량이 늘어나고 수면시간은 줄지만, 상승된 기온으로 근육은 이완되면서 나른한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이다. 춘곤증은 기온 상승으로 인한 말초혈관 확장, 근육 이완, 활동량 증가에 따른 에너지 요구량 증가, 비타민 부족 등으로 생기는 일시적인 현상이며 일정 기간이 되면 없어지므로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다. 이외에 업무환경 변화, 불규칙한 식사나 수면, 인스턴트식품 과다섭취, 폭식, 과음, 노화 등이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김의중 을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춘곤증으로 너무 힘들다 싶을 때는 잠시 눈을 붙여보는 것이 좋다”며 “낮잠에 적정시간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30분∼1시간 이내의 낮잠은 인지기능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피로에서 비롯된 춘곤증은 단백질과 비타민이 답이다. 비타민B와 C가 풍부한 신선한 야채와 과일을 많이 먹고 돼지고기 등의 기름기가 많은 음식은 피하는 것이 좋다. 피로해소와 면역력 증강에 도움이 되는 비타민C는 봄철 채소와 신선한 과일, 산채류, 봄나물 등에 많이 들어 있다. 풋마늘, 쑥, 원추리, 들나물, 취나물, 도라지, 두릅, 더덕, 달래, 냉이, 돌미나리, 부추 등 봄나물에는 입맛도 돋워주고 피로해소에 좋은 비타민과 미네랄이 풍부해 원기를 회복하는 데 효과적이다.

에너지 생산을 위한 대사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데 도움을 주는 비타민B1, B2, B6, B12, 판토텐산 등은 현미, 율무 등 도정하지 않은 곡식류와 생선, 우유, 계란 노른자, 호두나 잣 등의 견과류, 콩, 녹황색 채소 등에 많이 들어 있다. 각종 해조류에는 비타민, 미네랄 등 미량 영양소가 많아 끼니 때마다 다시마, 미역, 김 등 해조류를 곁들여 먹으면 춘곤증을 이기는 데 도움이 된다. 종합비타민제를 복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다만 졸음을 쫓기 위해 지나치게 담배를 많이 피우면 뇌의 산소 부족으로 더욱 나른해질 수 있다. 적당한 커피 등 카페인 음료와 함께 충분한 수분을 섭취하는 것은 신진대사를 빨리 회복시키므로 춘곤증에 효과적이다. 그러나 카페인 음료를 평소보다 많이 마시면, 처음에는 어느 정도 각성효과가 있으나 정도를 지나치면 이뇨 작용으로 인한 탈수 등의 부작용을 초래할 수도 있다.

조비룡(가정의학) 서울대 교수는 “최근 들어 춘곤증 등 피로를 호소하는 환자들이 많이 하는 질문은 자신이 ‘만성 피로 증후군’이 아닌가 하는 것”이라며 “그러나 피로가 수면으로 호전되지 않는 경우는 100명 중 1명도 채 안 되는 매우 드문 경우”라고 말했다. 봄에 피로를 느끼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자신의 생활양식을 정비해 보고 최근 심해진 스트레스에 잘 대처하고 있는지를 따져보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 무리를 했다는 생각이 들면 무엇보다도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경우 하루의 충분한 휴식만으로 피로가 없어짐을 느낄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잠을 늘리는 것은 오히려 해가 된다. 자신의 하루 평균 수면 시간이 어느 정도 되는지 확인해 두고 수면시간을 유지하는 것이 좋다.

‘운동’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피로를 호소하는데 운동을 하라고 하면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평소 활동량이 적은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약간의 운동이 몸에 큰 활력을 불어넣어 준다. 팔을 힘차게 흔들며 빨리 걷기를 하루에 2∼3번 10∼30분씩 시행하는 정도만으로도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한 몸의 노폐물을 연소시켜 없애버리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춘곤증 증상이 한 달 이상 지속되면 수면장애를 의심해야 한다. 감기, 결핵, B형간염, 지방간, 갑상선 질환, 당뇨병, 고혈압 등은 피로감이 함께 나타나 춘곤증으로 오해할 수도 있다. 질병이 없는 데도 불구하고 한 달 이상 계속 피곤한 경우나 피로와 함께 체중감소, 식욕부진 등의 다른 증상이 나오면 병원을 찾는 것이 좋다.

이외에 과로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피로하고 휴식을 취해도 피로해소가 안 되는 경우, 생활에 지장을 받을 정도로 무력감을 느끼는 경우, 나른함이 점점 심해질 때, 갑자기 졸음 증상이 나타날 때 등도 질환을 의심해볼 수 있다.

이용권 기자 freeus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