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로열발레단의 마고트 폰테인(1919∼1991)이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1980년 마지막 내한공연을 할 때 환갑 나이였다. 러시아 볼쇼이발레단의 스타 마이야 플리세츠카야(1925∼ )는 70세 때 ‘백조의 호수’ 중 ‘빈사의 백조’를 추었고, 80세 기념무대에도 올랐다.

이들 디바는 ‘영원한 발레리나’로 불멸의 전설을 남겼지만, 발레무용수들은 대부분 40세 무렵 토슈즈를 벗는다. 파리오페라발레단을 비롯해 해외 유명발레단별로 명문화한 단원의 정년이 40∼45세다. 국내발레단의 경우 정년 규정 없이 연간 단위로 계약하며 무용수 스스로 체력과 무대 활동의 한계를 느낄 때 알아서 물러나는 것이 불문율 같은 전통이었다. 여성의 경우 결혼과 출산 과정에서 발레단을 그만두니, 정년 나이를 따질 상황이 못 됐다.

지난해 7월 유니버설발레단의 ‘오네긴’ 공연 때 피날레를 겸한 주역발레리나 강예나 씨의 은퇴공연은 이례적이었다. 그동안 발레무용수가 공개적으로 은퇴무대를 치른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무용 장르 중에도 발레는 무용수의 수명이 짧다. 특히 정형화된 동작에 충실해야 하는 클래식발레는 40대 이후의 무용수에겐 넘기 어려운 ‘벽’ 같았다. 점프·돌기·스피드 등 고도의 테크닉과 체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물론 국내발레에도 40대 후반의 현역은 존재한다. 지난해 발레무대에 선 김순정 성신여대 교수는 50대 중반이다. 발레리노로는 올해 47세인 이원국 씨가 자신의 발레단을 이끌고 무대활동 중이다. 지난 연초 66세로 작고한 이상만 리발레단 대표는 작고 직전까지 무대를 이끌었다.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 무용수에서 국립발레단 단장으로 돌아온 강수진 씨도 1967년생, 47세다. 강 단장은 오는 7월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발레단의 ‘나비부인’ 내한공연에 직접 출연한다.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일정에 따르면 강 단장의 은퇴공연은 지금부터 2년 후인 2016년으로 잡혀 있다.

이 같은 발레무대의 정년 논란이 무색할 정도로 연초 들어 한국무용과 현대무용에선 60∼70대 무용수의 공연이 잇따르고 있어 대조적이다. 지난 주말 열린 현대무용가 김복희 씨의 정년퇴임 기념 공연에 이어, 한국무용에선 국수호 씨의 ‘춤 50주년 춤의 귀환’ 무대가 3월5, 6일, 김매자 씨의 ‘그리고, 다시 봄 김매자’공연은 3월 26, 27일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펼쳐진다. 사실 한국무용에선 80대에 세월의 연륜과 인생의 깊이가 묻어나는 무대를 펼치는 명무공연이 결코 빅뉴스는 아니다. 작고한 김천홍 선생은 90세 때 무대에 올랐다.

노장 무용수들의 발표무대와 관련해 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대학서 무용을 배우기 시작해 교육과 창작활동을 병행해온 우리춤의 선구자로서 이들의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태도가 이상적인 무용인상과 무용계의 화두를 제시한다”고 말했다. 게다가 기존 레퍼토리의 나열, 제자들의 헌정 무대식의 의례적인 공연이 아니라는 점에서도 무대의 활력소이자 후학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전문무용수지원센터(이사장 박인자)를 중심으로 무용수의 은퇴와 그 이후의 삶에 대한 논의가 제기되는 가운데, 이들 노장 무용수의 무대는 신체 나이를 넘어선 ‘세월의 춤’에 대한 기대와 관심을 일깨운다.

신세미 기자 ssem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