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정기/논설위원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제안한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김영란법)’이 여태 국회를 못 떠나고 있다. 김 전 위원장도 이젠 지쳤을 것이다. 마뜩찮아진 그 이름을 반납받았으면 싶을지도 모를 일이다.

3주 전 3일, 김한길 민주당 대표가 2월 국회에선 성사시킬 방침이라고 다시 약속했다. 새누리당도 그러자고 맞장구쳤다. 그러나 두 당의 김영란법이 실은 제각각이다. 원래 근사했던 그 이름 제대로 건사할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훨씬 앞서 지난해 7월 15일, 박근혜 대통령이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김영란법을) 조속히 제정하는 등 부정부패 해소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다잡았었다. 그 후 크게 달라진 것? 없다.

정홍원 국무총리가 주재한 7월 30일 국무회의는 기어이 ‘김영란도 마뜩찮아 할 김영란법’으로 뒤틀고 말았다. 공직사회에서는 공무원의 기득권을 흐릴지 모른다 싶으면 대통령의 일언(一言)도 실은 별것 아니라던가. 하물며 그 명(命) 받드는 총리로서야….

그렇다. 김영란법의 공무원 3금(禁)은 근 3년 세월에 부대끼면서 그 초지(初志) 점점 무뎌지고 또 흩어져왔다. 처음의 ‘반(反)부패’가 ‘반(半)부패’쯤으로 어물쩍 물러서고 만 것이다.

제1금 부정 청탁

제2금 금품 수수

제3금 사익(私益) 추구

그새 3년 가까이 흐른 2011년 6월 14일 국무회의, 당시 김 위원장이 처음 제안한 김영란법의 태명(胎名)은 ‘공직자의 청탁 수수 및 사익(私益)추구 금지법’이었다. 법무부가 공직사회를 대표…아니, 대변… 또 아니, 대신해 가타부타하기로는 좀 밋밋한 이름이었다. 왜 그리 트릿한 태명으로 시작했을까. 처음부터 작심하고 제1·2·3금을 한 묶음으로 버무려 ‘공직자 금품수수 금지법’으로 짓지 않았을까. 공직자라면 무슨 돈, 그 어떤 돈을 청해서도 받아서도 안된다며 법의 이름부터 그렇게 딱 부러지게 지었더라면 그 후 모든 게 달라지지 않았을까….

지금의 이름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은 말하자면 제1·3금법이다. 제2금의 검은돈은 이름 밖으로 새나가고 말았다. 지금 이름으로 굳어진 것은 제정되지도 않은 그 법이 공직사회를 긴장시키기 시작하고도 제법 지났을 무렵이다. 그해 12월 28일 김 위원장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제1·3금법 제정을 차기연도 최대 역점 사업으로 보고했고, 해가 바뀐 2012년 1월 4일에는 “판사 시절에 어이없는 청탁도 많이 받았다”고 털어놓기까지 했었다. 그런 김 위원장이 8개월 더 지나 그나마 행정절차법 소정의 입법예고 절차를 밟기 시작했지만 2012.8.22∼10.2의 그 입법예고가 실은 김영란법 원안의 잔명(殘命)이었다. 김 위원장은 남편 강지원 변호사가 대선에 출마해 먼저 물러나야 했다. 입법예고 중이던 9월 4일 사의를 밝히자 법무부 측이 줄곧 그 사표 언제 수리되느냐고 묻고 또 물었다던가(‘이제는 누군가 해야 할 이야기’, 김영란·김두식 저, ㈜쌤앤파커스·2013.5.2). 당시 이 대통령도 자신의 임기 내 그 법 만들고 싶었겠지만 그런 법무부를 주저앉히지도 못했다.

그리고 1년…, 제2금은 더 허술해졌다. 원안은 공직자가 직무 관련, 명목 여하를 불문하고 누구로부터도 어떤 금품도 받거나 요구·약속하는 것을 금하면서 100만 원을 기준으로 그 선 넘어서면 형사 처벌, 못미치면 과태료 처분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7월 30일 ‘국무총리 정홍원(국민권익위원회 소관)’의 이름으로 국무회의를 거쳐 8월 5일 국회에 제출된 정부 법안은 직무관련성 여부로써 형사 단죄와 과태료 처분을 갈라세운다. 김영란법이 이미 아니다. 그렇다고 ‘정홍원법’이라기도 뭣하고…그것, 참 .

국회도 법무부의, 공직사회의 비토 기류를 내심 반겨왔(다고 한)다. 국회의원이 그 법 적용 대상이기 때문이다. 못믿을 저 국회가 과연 2월 국회 회기 내에 김영란법 원안을 복원해 통과시킬까, 아니면 또 다른 곡조로 ‘소지황금출(掃地黃金出)’을 노래할까.

저기 저 너머 봄처럼 김영란법도 희망이다. 박 대통령 대선 공약집의 ‘부패없는 깨끗한 정부…공무원의 직무 수행과 관련한 사익 추구 금지’를 위해서도 원안 반드시 복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