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지난 5일 발왕산 9분 능선에서 바라본 용평스키장 쪽의 전경. 며칠 전 내린 겨울비로 고목과 잡목에 피었던 ‘눈꽃’은 사라졌고, 등산로는 얼어 빙판이 됐다. 평창 = 임정현 기자 theos@munhwa.com

8일부터 온 국민의 시선은 흑해 연안 러시아 휴양도시인 소치에 쏠리게 된다. 지구촌 최대 겨울 스포츠 축제인 ‘2014 소치동계올림픽’이 열리기 때문이다. 한국시간으로 8일 오전 1시 14분(현지시간으로는 7일 오후 8시 14분, 즉 20시 14분으로 2014년을 의미) 개막하는 소치동계올림픽은 4년 후 강원 평창군에서 열릴 2018 평창동계올림픽의 ‘시작’이기도 하다. 오는 24일 소치올림픽 폐회식 때에는 이석래 평창군수가 대회기를 인수하면서 평창동계올림픽은 ‘카운트다운’에 들어가는 것.

신년 들어 ‘엄홍길 대장과 오르는 山’의 테마는 ‘몰입의 겨울산’이었다. 그래서 여기에 ‘기원’을 추가했다. 소치올림픽에서 태극전사들의 선전을 기원하고, 4년 후 이 땅, 특히 강원도 산하 일대에서 펼쳐질 2018 평창동계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산에 오르기로 했다. 엄홍길(54·밀레 기술고문) 대장은 “4년 전 밴쿠버동계올림픽에서 국가대표 선수들의 값진 도전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번 소치올림픽에서는 그간 올림픽 무대에 서지도 못했던 종목의 선수들이 새로운 도전에 나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4년 전의 감동을 재현하고 4년 후를 준비하는 멋진 무대가 됐으면 좋겠습니다”면서 평창동계올림픽의 주무대가 될 발왕산(發王山·1458m)행을 제안했다.

발왕산은 남한에서 열 번째로 높은 명산으로 산사람들은 잘 알지만 일반인들에게는 그 이름이 조금은 낯설다. 그런데 용평스키장, 리조트가 있는 산이라고 하면 금세 안다. 제 이름보다 스키장으로 더 잘 알려진 곳이다.

발왕산은 강원 평창군 진부면과 대관령면 경계에 솟아 있다. ‘여덟 왕이 쓸 묏자리가 있다’하여 팔왕산으로 불리다 발왕산이 됐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왕이 날 자리가 있다’고 해 발왕산이라고 불렸다는 얘기도 있다. 일제강점기에 ‘임금 왕(王)’자가 ‘성할 왕(旺)’으로 격하되는 수모를 겪다가 2002년 원래 이름을 되찾았다. 조선 후기 ‘대동여지도’나 ‘조선팔도지도’ 등에는 발음봉(鉢音峰)으로 표기돼 있기도 하다.

산 이름과 관련한 슬픈 전설도 전해지고 있다. 발왕산이 위치한 이 고을에 발이 크고 기골이 장대한 ‘발왕’이 살고 있었는데, 몸집이 지나치게 큰 탓에 장가를 못 가 애태우다 우연히 옥녀라는 아가씨를 만나 사랑을 하게 됐다. 옥녀와 결혼을 약속한 발왕은 돈을 벌기 위해 떠났으나 제왕고개를 넘던 중 산적으로 오인돼 포졸들에게 잡혀 맞아 죽었다고 한다. 이를 모르는 옥녀는 기다림에 지쳐 죽었는데 그녀가 묻힌 봉우리가 바로 건너편의 옥녀봉이라는 이야기다.

발왕산행은 아주 쉽게 할 수도 있고, 땀을 좀 뺄 수도 있다. 용평스키장의 명물인 곤돌라를 타고 정상 9분 능선까지 다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등산로를 따라 ‘드래곤피크’를 거쳐 정상에 올랐다가 곤돌라를 이용해 하산하거나 거꾸로 곤돌라를 타고 올랐다가 등산로를 되짚어 내려가는 ‘반등 반곤돌라’ 등 컨디션과 상황에 따라 선택의 폭이 넓다. 이 경우 2∼3시간 이내에 산행을 마칠 수 있다.

그러나 등산 애호가들은 스키장 옆 용산2리에서 올라 정상을 지나 드래곤피크를 거쳐 용평스키장에 마련된 등산 코스를 따라 내려오는 정통 코스를 선호한다.

횡계인터체인지를 들어서자마자 “소치동계올림픽에서의 태극전사들의 선전을 기원합니다”라는 현수막이 여기저기 내걸려 있던 소치동계올림픽 ‘개막 D-2’인 지난 5일 발왕산을 찾았다.

산행은 스키장 입구 주차장을 지나 우측 도로로 15분쯤 가면 있는 용산2리 마을회관에서 시작된다. 정상으로 가는 길은 사잇골과 윗골 외에도 여러 곳 있으나 대개는 경관이 좋은 사잇골로 많이 오른다. 사잇골 계곡을 1시간 30분쯤 오르면 앞이 확 트인 1025m 능선고개에 이른다. 주능선을 몇 번 오르내린 끝에 1400m 고지의 넓은 공터 ‘작은마당’을 거쳐 주목 군락지를 감상하면서 20분쯤 걸어 ‘큰마당’까지 오르면 정상 8분 능선이다.

발왕산 정상에 서면 여느 산과 달리 아직 정상석이 없다. 대신 사람 한 키 정도로 올라간 돌탑과 삼각점 안내판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정상에서의 경관은 남한에서 열 번째로 높은 명산의 위용을 과시한다. 멀리 동쪽으로 노추산, 서쪽으로 계방산과 백석산, 남쪽으로 가리왕산, 북쪽으로 오대산과 황병산 등 고산준령이 춤을 춘다. 며칠 전 내린 겨울비로 나뭇가지와 바위의 눈이 씻겨 나간 탓에 풍광은 순백이 아닌 회색빛이다. 등산로의 눈은 내린 비로 더욱 만질만질해졌지만 상고대는 사라진 것. 그래도 멀리까지 시야가 트이는 눈 덮인 고산들과 리프트를 타고 오르내리는 스키어들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이 된다.

정상에서 장구목과 발왕재를 거쳐 용산리의 윗곧은골까지 이어지는 2.5㎞ 정도의 등산로는 잘 알려지지 않은 눈꽃 트레킹 코스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상보다는 인근의 스키장 주변으로 많은 사람들이 붐빈다. 발왕산 정상 9분 능선에 위치한 용평리조트의 드래곤피크는 고랭지 배추밭으로 유명한 고루포기산을 비롯해 대관령 고원 등이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대다.

이곳은 드라마 ‘겨울연가’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욘사마’열풍으로 일본인 관광객의 필수 코스였다. 그런데 이날은 대부분이 중국어를 한다. 요즈음 ‘엔고’와 ‘정세’를 반영하는 것 같다. 그들은 중국산 ‘겨울연가’를 찍고 있었던 것.

하산은 그야말로 기분과 컨디션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곤돌라를 타고 20여 분 만에 곧바로 내려가면서 설원을 감상할 수도 있고, 슬로프를 따라 정비돼 있는 등로의 눈밭을 걸을 수도 있다. 그러나 드래곤피크를 지나면 본격적인 하산길이 이어지고 두어 군데의 스키장 슬로프를 가로질러야 하는 곳도 있어 스키어들과의 충돌에 주의해야 한다.

드래곤피크 건물의 우측으로 돌아 나가면 슬로프 옆길로 등로는 가파르게 떨어지고 수북이 쌓인 눈길을 푹푹 빠지면서 주목 군락지를 지난다. 한동안 가파르게 내려서던 등로는 스키장 슬로프를 조심스럽게 가로지르고 잠시 비탈진 길을 내려오면 실버등산로 갈림길을 만난다. 곧바로 이어지는 골드능선길을 가파르게 내려서면 다시 스키장 슬로프를 만나고 슬로프를 따라 아래쪽으로 잠시 내려오면 우측으로 등로가 열려 있다.

골드정상을 지나면 다시 우측으로 등산로 입구 표지가 보이고 완만한 능선을 따라 내려서면 산책로 약수터다. 이후부터 등로는 넓은 임도로 이어지고 10여 분 후 목장길쉼터를 지나고 다시 10분쯤 뒤 골드등산로 입구에 내려서면서 실질적인 산행은 끝이 난다. 좌측으로 내려서면 골드등산로 입구다. 용평리조트에서 산행을 시작할 경우에는 이날 산행의 역순으로 진행하면 된다. 하산하면서 스키를 즐기고 있는 젊은 선수들을 마주하면서 4년 후 이곳에서 태극전사들이 설상종목에서도 메달을 만들어 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평창 = 박광재 기자 kj59@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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