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송재우 기자 jaewoo@

주역에서 말은 사계절 그 자체이다. 말이 달리는 것이 곧 시간의 흐름이다. ‘설괘전(說卦傳·주역을 해석한 십익(十翼) 중 괘를 설명한 이론)’에는 네 가지 종류의 말을 언급하고 있는데 양마(良馬), 노마(老馬), 척마(瘠馬), 박마(駁馬)가 그것이다. 좋은 말(양마)은 만물이 나오는 봄이다. 양기(陽氣)를 순진하게 간직해 그 덕(德)이 으뜸이다. 늙은 말(노마)은 양기가 극성한 여름으로 그 지혜가 으뜸이다. 마른 말(척마)은 가을에 해당하여 살이 적은 대신 근골(筋骨)이 준수하다. 얼룩 말(박마)은 겨울인데 호랑이도 무서워할 정도로 힘과 용맹이 으뜸이다. 말이 곧 시간의 흐름이라면, 갑오(甲午)년 말띠 해를 맞이한 우리는 어느 지점에 서 있을까. 주역학자 최정준 박사가 갑오년 한반도의 운수를 점쳐보았다.

◆ 21세기 갑오(甲午), 지난 갑오(1894·1954)와는 전혀 다르다 = 역리적(易理的) 관점에서 무엇보다 말은 선후천의 변화를 뜻한다. 말에 해당하는 지지 오(午)는 하루로 치면 오전에서 오후로 넘어가는 점심때이고, 1년으로 말하면 하지(夏至)에 해당한다.

우주의 시간으로 보면 선천(先天)에서 후천(後天)으로 넘어가는 오회중천(午會中天)의 시대이다.

선후천 변화의 해인 오(午)의 해 가운데 특히 갑오(甲午)는 60갑자(甲子) 중 31번째가 되어 전반부의 30년을 마치고 후반부 30년을 시작하는 첫해이다.

따라서 전환기로서의 변화라는 의미가 더욱 강하다. 역사적으로도 두 갑자(120년) 전 조선의 각종 제도를 폐기하고 서양식으로 확 바꾼 갑오년(1894)이나 한 갑자(60년) 전 비극의 6·25 전쟁을 멈추고 맞이한 첫 새해인 갑오년(1954)도 변화의 시기였다.

그러나 그 내용이나 과정의 고통을 생각해 보면 지금도 애한(哀恨)의 흔적이 서려있다. 지금 찾아온 21세기 갑오의 변화는 달라야 한다. 올해는 역사적 당위에 근거해 장기적 관점에서 점쳐볼 필요성도 있다. 다시 말해 한반도가 안고 있는 가장 큰 숙명적 과제를 살펴볼 수 있다는 것. 현재 화두는 남북통일과 동서화합, 즉 ‘통합’이다.

주역의 이치에 맞춰 갑(甲=1)과 오(午=7)를 팔괘의 순서대로 괘를 짓고, 이를 더한 8에서 여섯 효를 빼면 ‘집지용황우지혁(執之用黃牛之革)이라 하여 개혁적 변화의 의지를 단단히 잡고 나아가야 한다는 풀이가 나온다.

또 효사(괘를 이룬 여섯 개의 획과 설명) 마지막에 ‘막지승설(莫之勝說)’이라 하여 이 속에 들어있는 깊은 뜻을 다 말할 수 없다고 한 것도 음미해 볼 일이다.

또 ‘꾸러미에 물고기가 들어있다(包有魚)’하여 일정한 성과를 거둔다고 했으니 위정자는 물론이고 온 국민이 얼마만큼 통합에 확고한 의지를 지니고 나가느냐가 관건이다.

◆ 대전환기 맞이… 과연 한반도는‘통합’할 수 있나=주역의 팔괘를 그렸다는 복희씨(伏羲氏)가 5600년이나 앞서 한반도 정세를 예견했을리는 없다. 그런데 남북 분단과 통일을 예시하는 괘가 있다는 게 놀랍다. 바로 64괘 중 38번째 있는 화택규(火澤？I)괘이다.

규(？I)괘는 불은 위로 타오르고 못물은 아래로 흘러 서로 상하로 어긋남을 의미한다. 즉, 서로 의심하고 오해하여 분단된 상이다. 마치 38도선으로 분단되어 있는 한반도의 모습을 닮았다.

또 이 괘는 어긋난 상태에서 출발해 통합의 원리와 방법을 일러주고 나아가 그 시기까지 예시해준다.

규괘는 오해와 불신을 해결하여 화합에 이르는 여섯 단계를 말해주는데, ‘6’은 주역 원리에 근간을 이루는 수이다. 첫 단계는 말을 잃은 상마(喪馬)로서, 상대를 만나고 싶어도 말을 잃어버려 당장은 만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다 불신이 극에 다다라 극즉반(極卽反)으로 전환, 종국에는 화합으로 향한다.

효사를 풀어보면 “서로 어긋나 있어 외롭다. 돼지가 진흙을 짊어진 것과 귀신을 한 수레 실은 것을 본다. 먼저는 활을 당기다가 뒤에는 활을 벗겨서, 도적이 아니라 혼인을 하자는 것이니 가서 비를 만나면 길하리라”이다.

이를 한반도의 현실에 맞게 변통(變通)하면, “지난 시절에는 극심한 의심과 오해를 품고 적으로 규정하여 무기를 겨누고 지냈다. 후천의 다가오는 시절이 되면 의심과 오해가 풀려 무기를 내려놓고 바로 보니 적이 아닌 화합의 상대인 것이다. 음양이 화합하여 비를 내리듯 남남북녀가 만나 혼인하는 통일의 시절이 오면 길하다”가 된다.

◆갑오부터 기해까지 앞으로 6년… 남북통일 성패가 좌우된다=주역은 ‘두루(周), 바꾸어(易)’볼 수 있는 글이다. 6을 근간으로 하는 주역의 시간개념을 현재시점에서 바꾸어보면, 통일 담론을 나누기에 유의미한 시간은 앞으로 60년이고 특히 갑오년부터 향후 6년(甲午, 乙未, 丙申, 丁酉, 戊戌, 己亥)은 남북통일의 기초를 구체적으로 준비하고 조성해야 하는 때이다. ‘진흙을 짊어진 돼지’가 그 6년의 마지막 기해(己亥·2019)년인 것도 일치한다. 즉, 오(午)에서 시작된 후천적 기운을 해(亥)에서 갈무리한다. 쉽게 말해, 상호 불신을 풀어나가며 화합을 다지는 기간으로 삼아야 하는 것. 전환(轉換)의 기틀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다.

주역에 따르면 후천은 선천과 달리 자연에 대한 인간의 힘이 상대적으로 월등히 세진다. 자연과 인간의 조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늘이 준 기회도 사람이 정심(正心)과 성의(誠意)로 합하지 못하면 무의미해진다. 기해까지 전환의 기틀을 마련하지 못하고 경자(庚子·2020)년에 이르게 되면, 갑오에 시작된 기운이 도리어 천지가 상충하는 양상으로 돌변할 수도 있다. 두 갑자(120년) 전 갑오(1894) 동학가사의 “가보세(甲午歲) 가보세(甲午歲) 을미(乙未)적 을미(乙未)적 거리다 병신(丙申)되면 못 가리”라던 충고처럼 더 이상 다음으로 미룰 수 없다.

천운(天運)은 거창하게 세계평화나 남북통일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회복이 필요한 일이 있다면 전환기의 시작인 갑오년을 맞아 다시 시작하면 좋을 것이다. 흉조(凶兆)가 있더라도 그것을 길조(吉兆)로 변화시킬 줄 아는 새옹지마(塞翁之馬)의 해가 되기를 빌어본다.

정리 = 박동미 기자 pdm@ 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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