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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학의 눈부신 성과 덕에 이제 ‘누구나 오래 사는’ 세상이 열렸다. 그러나 인간 수명의 증가에 따라 각종 성인병은 늘어나고 신종 세균이나 슈퍼박테리아의 위협은 더욱 강력해지고 있다. 건강을 잃은 채 골골거리며 오래 사는 이른바 ‘유병장수(有病長壽)’의 시대가 된 것이다. 누구나 나이 들면 늙는다. 노화란 곧 병들고 쇠약해졌음을 뜻한다. 부작용 없이 젊음을 되찾아주는 실전적인 정보와 프로그램을 담은 이 책은, 그러나 노화는 운명이 아니라 예방할 수 있으며 치유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노벨의학상이 찾아낸 불로장생의 비밀,텔로미어 / 마이클 포셀, 그레타 블랙번, 데비브 워이내로 우스키 지음, 심리나 옮김 / 쌤 앤 파커스

노화란 흔히 걸리는 감기처럼 치료해야 할 질병이라는 것이다. 이런 류의 건강정보를 담은 책이야 그동안에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출간돼 기시감(旣視感)마저 들 정도지만, 이 책이 다른 책에 비해 특별한 것은 노화를 말하면서 ‘텔로미어’라는 다소 생소한 생리학적 원리로 노화를 막는 원리와 방법을 설득력 있게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책의 내용을 말하기에 앞서 우선 ‘텔로미어’에 대한 설명부터 시작하는 게 순서겠다.

텔로미어란 염색체 끝 부분에 해당하는 데옥시리보핵산(DNA) 염기서열을 말한다. 우리 몸의 세포가 분열할 때마다 염색체 끝에 매달린 텔로미어의 길이가 줄어드는데, 그 길이가 너무 짧아지면 세포에 노화가 와서 더이상 분열하지 못하고 죽음만 기다리게 된다. 그 결과로 나타나는 게 바로 노화 현상이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텔로미어가 짧아지면 노화가 온다’는 얘기다. 이 같은 사실을 밝혀낸 연구로 미국의 분자생물학자 엘리자베스 블랙번과 잭 조스텍은 2009년 노벨의학상을 수상했다.

책의 저자는 노화와 텔로미어와의 상관관계가 밝혀지면서 문제는 간단해졌다고 주장한다. 텔로미어의 길이가 짧아지는 것만 막는다면 노화의 속도를 늦출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텔로미어의 길이를 영원히 사수해서 수명을 무한대로 늘릴 수는 없지만, 줄어드는 속도를 늦추면 적어도 훨씬 긴 수명을 누릴 수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는 얘기다. 여기서 착안해서 저자는 텔로미어의 길이를 지키려면 어떤 음식을 먹어야 하고 어떻게 운동해야 하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준다. 포화지방 섭취량 감소를 위한 10계명이나, 텔로미어가 길어지는 생선 10가지, 수명을 늘려주는 최고의 보조제는 물론이고 텔로미어가 길어지는 2주 식단과 6주 운동프로그램까지 제시한다.

이 책이 제안하는 생활방식과 식습관, 운동습관 등은 어찌 보면 뻔하다. 흡연, 음주, 비만, 수면부족, 만성스트레스, 호르몬 불균형 등이 노화를 촉진한다는 건 구태여 텔로미어의 길이로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노화를 촉진하는 원인을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노화를 막기 위해 실천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보여준다는 점이 이 책의 미덕이다.

저자는 노화의 4대 주범으로 산화, 염증, 당화반응, 비정상적 메틸화를 꼽는다. 이를 막기 위해 항산화물질과 비타민 등의 미량원소 섭취, 당분이 덜 포함된 음식 섭취와 긍정적 메틸화를 촉진하는 과일 섭취 등을 권했다. 저자의 주장 가운데 눈길을 끄는 것은 육류에 대해 관대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점. 동물성 단백질이 배고픔을 느끼지 않게 해주고, 당뇨병 발병을 낮춰주며 체중을 줄여준다고 주장한다.

미국 네바다주의 한 생명공학 회사에서 텔로미어의 길이를 길게 만들어 주는 효소를 활성화시키는 화학물질을 찾기 위해 매주 4000가지 후보물질을 테스트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희망적인’ 소식도 책에 담겨있다. 화학물질로 모든 사람의 노화를 막고 생명을 연장하는 일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는 논외로 하고 말이다.

박경일 기자 parking@munhwa.com